"산"(종이에 수묵채색,66.5x130cm)은 풍곡 성재휴(1915-1996)화백이 1976년에 그린 작품으로 힘차고 소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강렬한 윤곽으로 산을 그리고 빛깔을 억제,양감과 형태감을 한꺼번에 강조했다.

단순 명쾌한 구도지만 규모가 큰 화면효과를 얻어내고 있다.

색은 절제하고,산세는 우람하게 그려 동서양화가 안고 있는 색과 형태표현의 문제점을 해결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얼른 보기에 서양화 같은 느낌마저 든다.

1987년 9월 호암갤러리에서 "풍곡 성재휴 회고전"이 열렸을 때 미술평론가 이경성 씨는 "산"은 색깔을 절제한 가장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동양화라고 평했다.

풍곡이 전통을 의식했음인지 강한 필선,먹으로 처리한 구름으로 옛 맛을 살려내고 있다.

1978년 그가 제4회 중앙문화대상(예술부문)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들은 전통을 승화시킨 새로움을 높이 평가했다.

풍곡은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평면성을 강조했다.

준법도 종래의 것을 파괴하고 강한 묵선,점,파묵등의 새로운 기법을 즐겨썼다.

"산"은 단순하지만 수묵농채라 할수 있을 정도로 채색성이 강한 작품이다.

하지만 단색이어서 강한 느낌보다 차분한 느낌이 더 든다.

풍곡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내고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늘 새로움을 보여 줬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그렇게 엉뚱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추구해온 작가의 길,화풍과 맥을 잇고 있다.

그의 그림에 맥맥히 흐르고 있는 것은 기(氣)에 차있는 묵선,간결한 필치,생동력으로 충만한 필선,서술적이거나 설명적이지 않은 표현,밝은 색채감 등이다.

이 작품은 지난 날 풍곡이 산수,자연을 소재로 그린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간소한 화법을 보이고 있다.

풍곡은 의재 허백련의 제자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초기 작품을 제외하곤 의재 맛이 나지 않는다.

스승의 영향을 벗어나 새로운 작업을 한 것이다.

그는 술을 좋아해 항상 취해 있었지만 술이 취한 상태에선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또 술도 한 곳에서 마시지 않고 이 주막 저 주막을 배회하는 버릇이 있었다.

풍곡은 술이 거나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판소리 한곡조를 뽑는 멋도 지니고 있었다.

1989년 봄,성북동 변종하 화백 댁에서 판소리 실연을 하기도 했다.

현대미술관 "한국미술 9인의 현재전"에 앞서 변종하 화백 기쾌유(祈快癒)의 자리로 마련한 연회에서 풍곡은 예의 "베틀가"를 불렀다.

이 자리에는 권옥연 김기창 김정숙 박두진 박용구 이준 이용우 김종근 씨 등이 있었다.

풍곡은 이처럼 술과 사람이 있는 자리면 어디서건 구성지게 판소리 한가락을 읊어야 신명이 났던 분이다.

풍곡의 판소리 철학은 그림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시류에 영합하는 그림을 노랑소리 라고 규정,곧잘 창법(唱法)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노랑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월간 art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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