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토스카'' 2막에 나오는 아리아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아서 행복하다는 내용이 아니라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 만큼 선한 일만 했는데 끔찍한 경우를 당하니 억울하다는 가사다.

한마디로 삶에 속았다는 것.

이쯤되면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 멀지 않다.

박완서(70)씨의 신작 장편 ''아주 오래된 농담''(실천문학사)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울 수밖에 없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심영빈은 유명한 내과 의사다.

어느날 그는 재벌후계자인 누이동생 남편이 폐암 말기란 사실을 알게 된다.

환자에게 병명을 알리려는 의사와 사실을 감추려는 환자 가족.

작가는 양자의 대립을 통해 현실의 위선을 폭로한다.

''의사가 보호자에게 통고하면 보호자는 환자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하고….왜들 그렇게 속이려드는지 모르겠어.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생각해봐 사람이란 거의 다 속아 사는 거 아니니? 사랑에 속고,시대에 속고,이상에 속고….일생 속아 산 것도 분한데 죽을 때까지 기만을 당해야 옳겠어?''

환자는 항암치료 한번 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

그리고 과부가 된 심영빈의 누이동생은 빈 몸으로 내쫓기다시피 한다.

''모두 조작된 거야.그이(남편)가 나에게 유산을 남기지 못하도록 술수를 부린 거야.가엾게도 그이는 자기가 죽는지도 몰랐어''

심영빈은 재벌 사돈의 눈먼 배금주의를 통박(痛駁)하지만 그도 거짓에 찌들어있긴 마찬가지다.

안락한 중산층 삶에 권태를 느끼던 심영빈은 초등학교 동창생과 혼외관계를 맺는다.

아들을 못낳았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심영빈의 아내는 남편 동료 병원에 가서 늦둥이를 얻는다.

안팎으로 속고 속이는 삶.

작가에 따르면 허위로 가득찬 세상을 건너는 방법 중의 하나는 ''거짓말을 농담''으로 아는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저 한바탕 농담으로 여기고 노여워하지 말라''는 권고다.

모든 것은 한갓 농담이니,거짓뿐인 세상에서 거짓의 구조물인 소설로 거짓을 고발하는 것은 모순이지만 그 정교한 거짓말은 분명 현실을 전복하는 힘을 갖는다.

많은 작가들이 오늘도 보다 그럴듯한 ''거짓말''을 짜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박완서씨는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며 "아직 소설 쓰는 고통을 즐길 만한 기운이 남아있으니 언젠가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배 작가 신경숙씨는 "흘려듣고 말 이야기도 선생의 손을 거치면 문학적 진경(眞景)이 된다"며 "웃으며 읽기 시작한 마음이 종내엔 엄숙해진다"고 독후감을 밝혔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