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한계 시간은 15초 정도라고 합니다.

40초가 넘으면 대부분 화를 낸다는군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그 안에 있을 때 사람들은 뭔가 생산성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처음 등장한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1초에 20㎝였습니다.

지금 일본 요코하마 관광타워의 특수 엘리베이터는 초당 12m이상으로 ''날아''다닙니다.

비행기 이륙속도와 맞먹는 빠르기죠.

요즘은 ''나노초(nanosecond:10억분의 1초)''라는 표현도 씁니다.

10억분의 1초라면 거의 움직임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인데 위성 신호를 받을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고 하네요.

1나노초의 오차가 생기면 빛이 이동하는 거리로 따져 약 30㎝의 편차가 난답니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어서는 안되고 시간도 빛의 단위로 쪼개 써야 하는 세상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빠르고 부지런해야 될까요.

''카오스''의 저자인 과학 저널리스트 제임스 글릭은 신간 ''빨리 빨리''(석기용 옮김,이끌리오,1만원)에서 시간에 대한 현대인의 병리현상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습니다.

부제부터 ''초스피드시대의 패러독스''지요.

얼마전에 나온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동문선)과 비교해서 읽어도 좋을 듯합니다.

그 책이 유럽 철학자의 인문적 사유를 담고 있다면 이 책에서는 미국 과학저술가의 사회학적 성찰이 느껴집니다.

미국판 ''느림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뉴스채널 CNN과 음악채널 MTV는 속도전의 선두주자로 꼽히지요.

CNN은 30초짜리 광고를 접수해 8초나 5초짜리로 만들어버렸고 MTV의 뮤직비디오는 어떤 쇼트도 1∼2초 이상 지속되는 법이 없습니다.

신문들도 현대인의 습성에 맞춰 기사를 짧게 쓰고 여러 일간지를 요약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죠.

야구경기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온갖 규칙들로 얼룩졌고 배구 또한 서브권이 없을 때도 득점이 인정되는 랠리 포인트 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하기야 러시아의 대문호 솔제니친도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16년보다 전차를 기다리는 16분을 더 지루해하는 자신에게 놀랐다고 하니 ''시간''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요.

저자는 현대인들이 시간을 사고 팔면서 낭비하는 데 그치는 반면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원하는 만큼 시간을 창조하고 생산한다는 얘길 들려줍니다.

시간이란 분할된 꾸러미들의 연속체라기보다 하나의 지속적인 흐름이며,인간에 의해 정의되고 분석되고 측정되는 것이지요.

잃어버렸다가 되찾는게 아니므로 과학기술이 더 많은 시간을 갖게 해주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내맡기거나 헤엄치는 것은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지요.

시간의 무늬는 스스로 디자인하기 나름이라는 얘깁니다.

이 책 속에는 많은 명구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대목이 에밀레종의 울림만큼 긴 여운을 남깁니다.

"지난 세기의 위대한 인물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는 그들을 성급하게 잊지 않는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