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에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있다면 알바니아엔 이스마엘 카다레가 있다.

마르케스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남미의 역사를 재구성한다면 카다레는 고대희랍비극으로 발칸의 현대사를 다시 쓴다.

만년 노벨상 후보인 알바니아 소설가 이스마엘 카다레의 장편 ''H서류''(박철화 옮김·문학동네·7천5백원)가 번역됐다.

1981년 발표된 이 작품은 호메로스연구를 위해 알바니아를 방문한 아일랜드 학자 이야기다.

작가는 서사시전통을 둘러싼 자존심싸움을 통해 원한과 복수로 얼룩진 발칸의 역사를 우회적으로 말한다.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

그러나 단순한 편집자인지 저자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 작품은 1930년대 중반 호메로스의 자취를 찾아 알바니아에 온 서방학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그들은 일리아드의 첫 구절이 알바니아어임을 안다.

학자들은 당시로선 새로운 발명품이었던 녹음기를 들고 구전서사시를 채록한다.

세르비아 수도사는 일리아드의 기원이 알바니아로 밝혀질까 두려워한다.

그는 녹음기를 인간의 영혼을 빼앗는 악마의 기계라고 중상한다.

격분한 알바니아인은 녹음기를 빼앗아 내동댕이친다.

''그들은 호메로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에 가까이 갔다.

그것을 잡으려는 찰나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서사시의 땅에 황혼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알바니아인들은 세르비아인들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서방학자들을 공격했다고 거짓 소문을 퍼트린다.

미국의 퍼블리셔 위클리는 ''어처구니없는 의심,저주받은 학문적 모험의 코미디''라 평했다.

뉴욕 머켄탈도서관장도 ''보르헤스와 카프카적 재능을 함께 지닌 이스마엘 카다레의 슬픈 조서''라고 했다.

1936년 알바니아 태생인 이스마엘 카다레는 장편 ''죽은 군대의 장군''''부서진 사월''등을 통해 인간과 역사의 문제에 천착했다.

카다레는 1990년 프랑스로 망명,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카다레는 28-29일 교보문고와 서울대에서 강연회를 갖는다.

(02)721-3202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