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한 시대의 표현이다.

표면적인 의미로는 단순히 사람들이 입는 의상을 말하지만 ''왜 그 사람이 그 옷을 입고 있는가''를 따져볼 때 당시의 권력구조와 문화,사회계급 등 시대상황이 패션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패션의 역사''(이재원·천미수 옮김,한길아트,전2권,각권1만8천원)는 유럽 역사를 패션이라는 잣대로 재해석한 책이다.

독일의 문화사가이자 비평가인 막스 폰 뵌의 주요저서 패션(Die Mode,전8권)을 의상학자 잉그리트 로셰크가 두 권으로 요약,다시 서술했다.

중세부터 로코코 시대,혁명의 시기인 18세기,자본주의의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까지 유럽사회 전반의 문화와 인간사를 방대하게 보여주지만 사람에게 가장 밀접한 기호인 패션을 매개로 했기 때문에 결코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다.

특히 각 시대의 작은 유행들이 역사의 큰 증표임을 입증하는 일화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뵌에 따르면 인류사에서 최초의 유행은 십자군 원정으로 시작됐다.

여러 민족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십자군은 각기 다른 생활양식과 옷을 서로에게 선보임으로써 중세인들의 미적 시각을 트이게 만들어준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무어인들로부터 유래된 미파르티(두세가지 색으로 나뉜 옷)스타일은 16세기까지 유행했다.

바지의 한쪽 다리는 빨간색으로 다른 쪽 다리는 파란색으로 입는 이 스타일은 색이 화려한 옷을 입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남부 유럽과 중부 유럽에 널리 퍼졌고 지금은 어릿광대 의상에 남아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화려하고 고급스런 의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여자옷보다는 남성패션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남자 바지 앞트임에 ''신체 일부분과 똑같은 모양''으로 주머니가 달려있는 등 남성의 힘이 옷을 통해 최대한 과시됐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외에 아름다운 헤어스타일을 위해 머리에 벌레가 생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날씬하게 보이려는 욕심에 코르셋으로 몸을 졸라맨 끝에 죽음을 맞는 17세기 프랑스 여인들과 같은 다양한 군상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복식의 스타일과 장식들,아이템이 더욱 다양해지는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패션용어 자체가 집단과 계급을 대변해주는 대명사로 등장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기의 과격 공화당원들을 일컫던 상퀼로트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상퀼로트들은 귀족이 입었던 무릎길이의 반바지(퀼로트)를 벗어버리고 긴바지를 입음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현했다.

이 책은 1910년대의 서술에서 멈추지만 현재를 고찰하고 미래를 상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패션을 통한 역사읽기와 함께 두권의 책에 빽빽히 자리잡고 있는 유럽의 명화와 알려지지 않았던 삽화들이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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