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문명,문화와 반문화,평화와 전쟁은 물론 번영과 후퇴,갈등과 조화,확신과 불확실성 등을 야기하는 거대한 역사흐름의 실체와 인과는 무엇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도도하게 흘러가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고자 애써왔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낸 것은 고작 ''역사에는 시대정신이 있고 확산과 수렴이 계속된다''는 현상인식뿐이다.

더구나 경제적 번영과 후퇴,그 변동인과와 효과적 대응책을 알아내는 데는 역부족이다.

예컨대 경제활동 수준이 낮아지거나 변동폭이 커지고 경기변동을 빈번하게 경험하면서도 대체로 사람들은 호황 때 자만하고 불황 때는 쉽게 좌절에 빠져든다.

이러한 인성의 퇴화를 막아내면서 지속적 번영을 지켜나가기에 우리 인간들은 참으로 나약하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한번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꽃을 피운 영국경제사를 되돌아본다.

비록 30여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에릭 홉스봄(Eric J Hobsbawm)이 쓴 ''산업과 제국(Industry and Empire)''(Weidenfeld and Nicolson,London,1968)을 다시 집어들었다.

홉스봄은 19세기까지 영국경제가 번영을 구가하고 그후 퇴락한 요인으로 놀랍게도 경제적 요인보다 비경제적 요인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 특히 기업하려는 의지와 새로운 상황 적응력,그리고 비경제적 자극''(제9장 몰락의 시작)을 경제변화의 기본요인으로 인식한 것이다.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MIT 폴 크루그만 교수가 유사한 역사인식을 지닌 것 같다.

그는 최근 ''왜 독일은 경쟁하기 어려운가''라는 글에서 성공하고 있는 미국경제와 곤경에 처한 독일경제를 비교했다.

그는 두 나라간의 이러한 차이가 정치.경제적인 면보다 철학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즉 게르만어권과 영어권간의 경제적 우열은 좌·우파적 관점인 정부개입과 자유시장주의간의 차이 또는 칼 마르크스와 아담 스미스의 차이라기보다,I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과 W 제임스 실용주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시대에는 진리의 속성을 구체화시킨 준칙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원칙주의 사조가 역사의 번영을 이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높은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당위론만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그 일을 잘 하도록 이끌어주지 않는다.

지식·정보화시대에는 규율보다는 신축성이,개입주의보다는 자유시장이,전체주의보다는 창조적 개인주의가 번영의 역사를 선도한다.

그렇다면 창조보다는 전통을,사실에 기초한 이유있는 이의 제기보다는 충성을,과학적 분석보다는 당위성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은 이러한 시대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금은 실용적 창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영어권에서 배우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게 깊숙이 잠재해 있는 창조적 시대정신을 발휘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지혜이고 책임이다.

그러나 누가 이 폭발적 창조정신에 불을 댕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