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네모,빌딩의 네모,시간의 표상인 달력도 네모요 죽어서 들어가는 관도 네모다.

네모 바깥의 시간을 찾아 나는 떠난다.

마음의 황야,태초의 흙을 찾아서''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승희씨의 산문집 ''너를 만나고 싶다''(웅진닷컴)가 출간됐다.

1990년대 초반 미국 버클리대 객원교수로 한국문학을 가르치던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여행은 스스로 귀양살이 가는 것이다.

가눌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기 파산선고인 셈이다.

우리 사회는 우리를 너무 빨리 늙게 한다''

미국에서 김씨는 중국,인도네시아,네덜란드 혼혈로 타이티에서 성장한 소설가를 만난다.

40대 초반의 여인은 놀랄 만한 야성으로 김씨를 매혹한다.

정체성의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그녀를 보며 김씨는 ''1백년 후 나는 너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바늘 하나만 들고 미국으로 건너온 문신예술가 문희,죽는 날까지 흑인여성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싸운 오드리,붉은 신령이 깃들인 땅을 달리는 소녀 자밀라.

이들은 모두 김씨의 자매다.

소설가 최인호씨는 "김씨는 거미여인의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며 "김씨가 만나고자 하는 ''너''는 무한자유를 꿈꾸는 또 하나의 ''나''"라고 말했다.

''시간이 열한시오십구분처럼 다가와 형리처럼 버티고 설 때,그동안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고 유언을 채근하는 사람처럼 바싹바싹 다가올 때,우리는 무엇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씨는 1973년 등단,시집 ''태양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산문집 ''33세의 팡세''를 상재했다.

현재 서강대 국문과 교수.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