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요.

패자는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행간에는 쓰러진 자의 슬픔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독법에 따라 책읽는 맛이 얼마든지 달라지지 않던가요.

요즘 서점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하사극 ''태조 왕건'' 덕분인지 출판계에서도 왕건과 궁예가 뜨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후삼국과 고려 초기를 담은 대중 역사서는 몇 권 안됐습니다.

그러다 올들어 김갑동씨의 ''태조 왕건''(일빛),이도학씨의 ''궁예·진훤·왕건과 열정의 시대''(김영사)가 잇달아 나왔고 엊그제엔 이재범씨의 ''슬픈 궁예''(푸른역사)가 출간됐습니다.

전공자 세 사람이 궁예·견훤·왕건의 평전으로 대리전을 벌이는 형국이군요.

그 중에서 이도학씨와 이재범씨는 승리자인 왕건을 중심으로 역사가 변색됐다며 견훤과 궁예의 복권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서부영화 ''석양의 무법자''를 기억하시지요.

그 속에 등장하는 3명을 후삼국시대 인물과 비교하는 얘기도 많이 들었을 겁니다.

흔히 미국 학자 허스트 3세의 ''좋은 놈,나쁜 놈,치사한 놈''이란 글을 빌려 왕건과 견훤 궁예를 대입시키곤 하죠.

사실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서 궁예는 가장 나쁜 캐릭터입니다.

''삼국사기''''고려사''에도 폭군으로 기록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진짜 몹쓸 인간이었다면 어떻게 한 나라를 일으키고 몇십년동안 강하게 키워냈을까요.

''슬픈 궁예''는 승리자인 왕건에 의해 드리워진 궁예의 그늘을 벗겨줍니다.

그의 ''악행''도 후세에 편찬된 ''삼국사기''''고려사''에서 덧칠됐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고려도경''을 근거로 궁예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합니다.

짧은 기간에 장군이 된 저력에서는 개인적 능력을 높이 사기도 합니다.

철원 천도를 국토개척으로 평가하고 여러번 바꾼 국호와 연호,거란과의 외교 관계 등을 통해 자주적이고 원대한 꿈을 지닌 제왕으로 끌어올립니다.

그렇지만 궁예는 몰락했습니다.

저자는 그 원인을 왕건의 쿠데타로 봅니다.

쿠데타 직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환선길이 난을 일으키고 공주 이북 30여개 성이 후백제에 넘어갔는 사실을 통해 궁예 축출이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파워게임으로 해석합니다.

물론 궁예의 책임도 언급돼있습니다.

철원 천도 때 많은 백성을 무리하게 새 도읍으로 옮기려 했다든지 무거운 조세 징수 등이 반발과 이탈을 불러왔다는 거죠.

저자는 궁예가 그토록 총애했던 왕건에게 쫓겨나 비참하게 죽는 장면에서는 브루투스에게 살해된 줄리어스 시저를 떠올리고 있군요.

그래서 궁예는 더욱 슬픕니다.

학계나 출판계는 서점가의 후삼국 시대 붐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일시적 유행에 편승한 상업주의에 우려를표시하는 시각도 있고 영웅 중심의 운명론으로 치닫는 것도 경계 대상입니다.

다만 천년 세월 저쪽의 승자와 패자를 재해석하는 힘이 지금 우리 삶에 어떤 성찰을 제공하는지,저마다 인생의 독법을 재음미하는 시간은 늘 소중하지요.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