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씨가 테마시집 ''히말라야''(민음사)를 펴냈다.

지난 97년 7월부터 40일간 티베트를 떠돌았던 경험이 담겨 있다.

중국의 시안(西安)에서 시작된 여정은 둔황(敦煌) 라싸(Lhasa)를 거쳐 히말라야 고원에서 끝난다.

''린포체가 동굴 속에 들어간다/그의 동료가/동굴 밖에서 굴을 막아버린다//오직 어둠속/어둠속의 기도만이었다//하루 한번의 차와 참파가 들어갔다/그러기를 12년/그러기를 30년/그 안에서 시간이 없어졌다/친구가 찾아왔다/그 친구는 죽음이었다//죽은지 10년 뒤/떠났던 동료가 돌아와 동굴을 열어보았다/뼈가 있었고/뼈 밑에서 샘물이 솟아났다//(동굴 샘물 전문)

시인은 백골이 진토된 자리에서 넋의 자유로움을 말한다.

8천m 히말라야 마나슬루 북벽을 바라보며 읊은 ''설인''은 추상 같은 기운으로 옹골차다.

''검은 북벽/그 너머/눈 뜨지 못하는 하얀 만년설/거기 발자국 있다/설인 발자국/사람도 아닌 짐승도 아닌/그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리 들리는/발자국 있다/거기서 포기하라/올려다보면 어느새 황금빛이다/하얗다가/하얗다가/눈병 나/황금빛이다/설인의 발자국 따위 필요없다/돌아서서/지상의 온갖 욕지거리 필요없다/돌아가면 그대 여생은 벙어리일 것''

티베트밀교의 고승인 밀라레파의 일생을 시로 풀어내기도 하는 고씨는 고원지대 유목민의 삶에서 종교의 경건함을 읽어낸다.

''할아버지 한마리 태어났어/증조할아버지/할아버지가 함께 대답한다/아,그래/아,그래//고조할아버지도/증조할아버지도/그냥 할아버지도/다 할아버지였다//증조할아버지 72세/할아버지 52세/아버지 32세/텐진 6세/고조할아버지는 몇살인지 모른다/아마 89세 90세/그 자신도 모른다''(5대 가족 중)

티베트 아낙네는 밀가루 반죽하다 말고 천막 안쪽으로 들어가 닭이 달걀을 낳듯 서서 아기를 낳는다.

아낙은 아기를 뉘어놓고 나와 밀가루 반죽이 조금 굳어진 것을 탓하며 물을 보탠다.

그것으로 끝이다.

유목민의 삶은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교훈과 같다.

고씨는 해발 6천m 고원에서 산소 희박으로 사경을 헤맸다.

체중도 10㎏ 이상 빠졌었다는 후문.

시인은 티베트 라싸에서는 "무엇을 배우기 보다 무엇을 돌이켜보는 일이 더 절실했다"며 "나 자신에 대한 회한과 성찰이 여기 담겼다"고 말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