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연극연출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전혀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는군요. 한국 배우들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나의 연출방향을 잘 이해하고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프랑스 연극계 최고 지성으로 통하는 연출가 다니엘 메스기슈(48)가 보름째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17세기 프랑스 고전비극 대표작 ''브리타니쿠스''를 21세기 한국 관객들 앞에 되살리기 위한 열정이 그 땀속에 배어있는 듯했다.

메스기슈는 브리타니쿠스를 한국어로 공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한다.

"프랑스어 특유의 느낌 없이 이 작품의 맛을 살리기는 힘듭니다.

12음절 정형시인 알렉상드렝의 운율을 한국어가 소화해내기는 어렵죠.하지만 프랑스어와 리듬감이 비슷해서 어느 정도는 다행입니다"

그가 굳이 이런 힘든 작업환경을 택해 한국으로 날아온 이유는 뭘까.

그는 자신을 이런 저런 변화를 자주 추구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이라며 우회적으로 답한다.

"지난해 9월 처음 한국을 방문해 한국고전불문학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불문학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친절함에 감동했습니다.
그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있던 차에 국립극장의 초청을 받았고 단숨에 OK했습니다"

브리타니쿠스는 몰리에르,코르네이유와 함께 프랑스 고전극 3대 거장의 한사람으로 칭송받는 장 라신의 작품.로마황제 네로가 이복동생이자 정적인 브리타니쿠스의 연인 주니아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브리타니쿠스를 살해하는 이야기 구조다.

라신은 사랑과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광기와 원죄적 고통을 다뤘다.

메스기슈는 "라신에게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내 연극이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고전스타일로 만들었다가 다시 전위적으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색채를 찾아왔다는 얘기다.

"고대 로마라는 배경,17세기 작품,21세기 무대라는 3가지 시간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현대적이면서도 고대 느낌이 나고 어느 순간에는 17세기 얘기 같은 분위기를 의상과 효과음악 등에서 추구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일까.

그는 라신 작품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안다고 자부한다.

"결국 라신은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연출자의 몫은 작품 뒤에 숨어있는 인물들의 의식과 철학을 오늘날 다시 음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죠"

9월1~1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장규호 기자 sein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