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두가지다.

전율을 일으키는 것과 여운을 남기는 것.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의 "춘희"를 보면 전율이 세번쯤 온다.

그러나 무대에 불이 꺼지면 감흥은 거품처럼 사그라든다.

도취를 속성으로 하는 무용은 짧고 강렬할수록 좋다.

중국 소설가 위화의 경우는 그 반대다.

어수룩한 바보들의 이야기는 술술 잘 읽힌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긴 여운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대개 전율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데서 온다.

지상에서 벗어나고픈 인간의 꿈을 나타내기 위해 발레리나들은 날아오른다.

인공이다.

하지만 맺힌데 하나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위화의 이야기는 자연에 가깝다.

위화가 소설가 이문구의 표현대로 "문림의 고수"란 별칭을 얻은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달관대인풍의 소설엔 "삶"이 있다.

지난달 번역된 "내게 이름이 없다"(푸른숲)의 주인공은 길가의 돌맹이처럼 하찮은 존재다.

남녀노소할 것없이 모두 그를 업신여긴다.

"사람들은 자기 부르고 싶은 대로 나를 불렀다. 재채기를 하다 나를 만나면 "재채기",막 변소에서 나왔다하면 "화장지"라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어이"였다"

물론 그에게도 이름은 있다.

그러나 진선생 이외엔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동네사람들은 노총각인 그에게 암캐를 붙여주며 그의 마누라라고 우긴다.

그는 개와 부부아닌 부부가 되어 정을 나눈다.

그러던 어느 복날 사람들은 개를 잡아 피투성이 되도록 두드려팬다.

도망친 황구는 침대밑으로 숨는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래발아,가서 네 개 좀 불러내봐"

주인공이 개를 부른다.

피칠갑을 한 절름발이 개는 감격해서 주인 품으로 뛰어든다.

사람들은 개를 빼앗아 개장국을 끊인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내가 개를 죽인 거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서 내 심장이 쿵덕쿵덕 뛰었다. 이제 다시 누가 내 이름을 불러도 절대 대꾸하지 않겠다"

1960년 중국 항조우 의사집안에서 태어난 위화는 북경대를 졸업한 뒤 1983년 등단했다.

초기에는 카프카류의 실험소설을 발표했으나 서민들의 비루한 삶을 소재로 한 우화적인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대표작으로 "허삼관매혈기""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이 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