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린가 쓰라린가 한숨인가/아라리 쪽박차고 넘든 고개"(쪽박아리랑)

아리랑은 "한민족의 만다라"요,"배달의 진언"이다.

체념인듯 희망을 이야기하는 흙의 소리엔 겨레의 역사가 녹아있다.

한반도일대 퍼져있는 아리랑 가사는 모두 3천여종.

"청천하늘에 별"만큼 많은 사연이 노래로 변한 셈이다.

재미작가 이창래(35)씨의 장편 "제스처라이프"(중앙 M&B,전2권,정영목 역)는 태평양을 건너온 "민족의 아리랑"이다.

작가는 조선인 군위안부의 이야기를 구슬픈 타령으로 들려준다.

미국이 한국의 역사문제를 다룬 이 소설을 자국문학사에 편입시키기 위해 안달하는 것을 보면 민족을 넘어 인간 실존의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 분명하다.

"제스처라이프"의 주인공은 모두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하타 박사는 일본으로 입양된 조선인 고아.

일본인으로 성장한 하타는 버마전선에서 조선인 위안부 "K"를 만난다.

K는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참형을 당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하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후 하타는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의료기상을 하며 상당한 재산을 모은다.

그러나 한국인 양녀 서니와 어울리지 못한채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작가는 정신대의 비극을 나열하지 않고 가해자의 회상이라는 정교한 소설적 장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서니는 양아버지가 한국인임을 모른다.

하타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니에게 하타는 일본인,미국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듯 보이나 실은 영원히 미국인이 될수 없는 "가짜"로 보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한국인이지만 서로를 소외시킨다.

"제스처라이프"는 역사와 인간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지식인 소설이다.

삼류민족주의에 호소하는 통속소설이 베스트셀러 수위를 다투는 요즘 "제스처라이프"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1980년대 한국에서도 정신대문제를 다룬 소설이 여러편 나왔으나 상투성을 면치 못했다.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이 작품은 미국에서도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소설가 이창래씨는 3세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예일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현재 뉴욕시립대 헌터칼리지 문예창작과 교수인 그는 첫장편 "네이티브 스피커"로 펜/헤밍웨이상 등 6개상을 휩쓸었다.

이씨는 IMF때 미국 주요신문에 한국관련칼럼을 기고했다.

다음 작품 역시 한국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한다.

이씨가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답은 이미 제목에 내포되어있다.

작가는 "<><>인척"하는 제스처를 부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인 인척,미국인 인척.

이씨는 하타박사의 제스처라이프를 거부한다.

원래 아리랑은 메기고 받는 "떼(집단)"소리다.

"삼천리 강토를 떠나 북만주에서"하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하고 받는다.

한 사람의 사연이 끝나면 또다른 사람이 노래를 이어간다.

이씨는 운을 뗐다.

이제 우리의 노래를 들려줄 차례다.

<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