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척이게 만들었던 빗줄기를 잠재운 것은 짙은 해무(海霧)였다.

섬 전체를 고스란히 싸고도 남을 큰 덩치의 해무는 소리없이 창밖까지 진군해 있었다.

미세한 물방울이 안경에 징그럽게 달라붙었다.

10m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거대한 먹구름에 휘둘린 태풍의눈 한가운데 서 있는 듯 했다.

덜컥 낭패감이 더해졌다.

예년과 달리 늦은 6월에 해무가 기승을 부린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처럼 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햇빛과의 싸움이 힘에 겨운 듯 했다.

끝없이 이어질 듯 보였던 해무가 이번에는 스르륵 소리를 내가며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낮은 앞 산 중턱이 휙 열리더니 거짓말 같이 먼 산까지 시야가 뻥 뚫렸다.

하늘은 높이 푸르렀다.

언제 해무에 고지를 빼앗긴 적이 있느냐는 투로 햇살을 내리꽂았다.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白翎).

시속 40노트의 쾌속선으로 4시간의 바닷길을 달려 닿은 백령도는 그렇게 새벽녘까지 애를 태우게 한 뒤에야 온 몸을 드러냈다.

서둘러 두무진(頭武津)으로 향했다.

두무진은 백령도 관광의 1번지.

갑옷 입은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모습의 기암으로 이어진 서북쪽 끄트머리의 바닷가다.

관광선 후미를 어지럽게 따라붙던 갈매기는 먹을게 없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줄줄이 선회했다.

어항을 벗어난 관광선은 왼쪽으로 꺾자마자 속력을 붙였다.

자맥질을 하는 검은색 깃털의 새들이 보였다.

40m 물밑까지 내려가 먹이를 잡는다는 천연기념물 가마우지다.

팔각봉 형상으로 우뚝 서 있는 검붉은 선대암의 중턱은 가마우지 무리의 배설물로 희끗희끗했다.

선대암을 왼쪽에 끼고 돌자 푸른 바다가 너른 가슴을 한껏 열어 젖혔다.

갖가지 형상을 한 왼편의 기암 무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서해의 해금강"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형제바위의 위용에선 이 지역 해병의 날카로운 눈빛이 느껴졌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도 활약했던 설학 이대기는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란 한마디로 헌사를 대신했다.

살아 움직이는 코끼리 모습을 한 코끼리바위를 지나자 기대하지 않았던 광경이 펼쳐졌다.

물개였다.

예닐곱 마리의 물개가 이방인의 출현을 경계하는 듯 물위로 머리를 빠끔히 내밀곤 했다.

두무진 어항으로 되돌아와 통일기원비 쪽으로 가파르게 나있는 좁은 길을 올랐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형제바위의 모습이 새롭다.

황해도 장연의 장산곶이 지척에 보였다.

직선거리로 12km 정도.

크게 부르면 북한사람의 대답을 들을 것도 같았다.

저 앞쪽은 심청이가 눈먼 아비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

하늘에서 보면 연꽃을 닮았다는 연봉바위도 가깝다.

오른쪽 아래 두무진엔 갈매기 떼를 선미에 단 어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숙소에 들렀다 다시 나온 작은 포구.

3천원짜리 대낚시를 드리우자마자 걸려 올라오는 우럭이 싱싱했다.

해병의 캐릭터 해병이의 눈처럼 선하고 평화로운 섬 백령의 두무진에서 맞은 6월의 늦은 오후.

붉은 기운의 낙조가 이쪽저쪽 편가름 없이 온 하늘에 뻗쳤다.

백령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