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만큼 재미있는 드라마는 없다.

픽션이 따라잡지 못할 탄탄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얘기에서 소재를 채택했다고 알리지 않아도 관객은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챈다.

대학로 이랑씨어터에서 공연중인 "용띠위에 개띠"가 그런 연극이다.

우연하게 사랑을 키우고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를 아껴가는 한 부부의 실제 스토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만화가 나용두(52년 용띠)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작업실을 찾은 잡지 기자 지견숙(58년 개띠)과 내기를 한다.

TV중계에 나온 한 야구선수의 출신교를 놓고 내기에 이긴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한다.

승자인 나용두는 결혼을 요청하고 지견숙은 이를 받아들인다.

"나는 인생을 선택이라 생각한데이.내 선택,니 선택 다 탁월했다"(용두)/"처녀 때로 돌아가도 당신을 택할 겁니더.당신은 바답니더"(견숙).

그들의 결혼생활은 이렇듯 장미빛이었다.

"선택"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선택이었지만 결국 파경에 이르는 결혼보다 차라리 나은 것 같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관객들에게 반문하는 듯 하다.

물론 신혼의 단꿈은 지루한 일상에 묻히고 만다.

말끝마다 "여자가 돼가지고..."란 여음구를 붙이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 용두에게 견숙은 점차 적개심을 갖는다.

방에 벌렁 드러누워 보란듯이 빨래줄에 빨래를 던지는 장면이 기발하다.

"나도 집에 들어오면 쉬고 싶다. 나도 차려주는 밥상 받고 싶다"고 견숙은 외친다.

관객 특히 기혼자들은 극이 진행될 수록 기가 막힌다.

"니 꼬불쳐둔 여자 있나"/"와"/"데려오면 수박통 날릴려고".

잠깐의 틈도 주지 않고 쏟아내는 대사들이 자신의 안방모습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반어법도 객석을 뒤집어 놓는다.

이쯤해서 갑자기 순환구조로 설정된 1장의 신(scene)이 떠오른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터질 것 같은 이내 마음을..."이란 배경음악으로 시작되는 1장 말이다.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지견숙이 "행복은 잠깐이데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자 용두는 담담하게 이를 부정했다.

"아이다. 세상에서 제일 긴 게 행복이데이"

앞으로 터져나올 관객들의 폭소가 감동으로 이어지는 매듭인 셈이다.

이도경의 타고난 코믹연기와 자연스런 동작,농익은 감정표현이 극을 빛낸다.

장규호 기자 seinit@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