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안 드 생텍쥐페리의 미망인 콩쉬엘로의 회고록이 번역됐다.

제목은 "장미의 기억"(창해,9천원).

생텍쥐페리 탄생 1백년에 출간된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생텍쥐페리의 "악덕"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악덕"이란 다름아닌 "바람기".

대개 예술의 이름으로 용서받는 "죄아닌 죄"다.

콩쉬엘로에 따르면 남편 앙트안 드 생텍쥐페리는 이기주의자였다.

그는 철저히 "아내 따로 정부따로"였다.

"바람과 모래와 별"의 작가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애인을 만들었다.

그러나 조강지처를 버리진 않았다.

결정적인 일을 당할 때마다 아내를 찾았다.

"나는 지독히 불행했다.

피카소,에른스트,뒤샹,집에선 날마다 파티가 열렸고 남편은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나는 혼자였다.

파리 여자들이 그에게 보내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단 하나의 해결책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콩쉬엘로는 남편을 떠나 고향 엘살바도르로 향한다.

그러나 남편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콩쉬엘로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생텍쥐페리는 부상에서 회복되자마자 비행기를 몰고 다시 떠났다.

"2차대전이 일어나자 남편은 전선에서 편지를 했다.

그는 휴가때 나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그가 이미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은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뉴욕에서 생텍쥐페리는 아내와 한 집에 살기를 거부했다.

남편 집에 무수한 여자가 드나드는 것을 눈뜨고 볼수 없었던 콩쉬엘로는 자기 아파트를 생텍쥐페리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했다.

이혼 직전의 콩쉬엘로와 앙트안은 1942년 "어린왕자"를 계기로 화해한다.

"난(어린왕자)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어.

가련한 꾀 뒤에는 애정이 숨어있다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 어려서 그를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꽃의 까다로운 성미를 견디지 못해 별을 떠난 어린 왕자가 자신이 길들인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이 이야기에서 꽃은 바로 콩쉬엘로였다.

1944년 어린왕자는 꽃의 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중해 상공에서 사라졌다.

꽃은 그보다 35년을 더 살다 생텍쥐페리 미망인으로 죽었다.

<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