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야만의 화가"라 불렀던 폴 고갱.

하지만 그가 표현한 "야만"에는 누구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함과 생동감이 넘친다.

화가 드가는 고갱을 "거짓된 미덕을 증오했고 본능과 감성에 어긋나는 것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깡마른 늑대""라고 평했다.

고갱은 뭉크 마티스 피카소 등 수많은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생전에 그의 작품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야만인의 절규"(폴 고갱 저,강주헌 옮김,창해,1만5천원)에는 문명의 삶에 대항해 "야만인"을 자처했던 고갱의 생애와 예술적 고뇌,인간적인 몸부림,작품세계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갱은 끊임없이 사색하고 연구하던 화가였다.

고통 및 좌절로 점철된 삶을 살았지만 예술에 대한 생각과 자잘한 일상사를 글로 정리함으로써 자신의 예술관을 더욱 견실하게 다듬어갔다.

이 책에는 "메르퀴르 드 프랑스"를 비롯한 각종 예술잡지에 발표했던 글과 아내 및 친구 예술비평가 작가에게 보낸 편지들이 연대별로 실려 있다.

"생명을 얻어 인간이 된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이 아니라 우상으로 추앙받을 여인을 그리고 싶다. 소금 기둥으로 변해버린 롯의 아내를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드가 세잔 르누아르 르동 등 당대 미술 거장들과 주고 받은 편지에서 고갱은 예술 및 예술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평생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아내 메테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고갱과 별거하면서 냉담한 태도를 보였지만 고갱은 끝까지 그녀의 남편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이기를 원했다.

그는 메테를 "덴마크의 진주"라고 표현했다.

"당신 눈에 내가 모든 매력을 상실한 사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그러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신에게 증명해 보여주고 싶소.벽보라도 떳떳하게 붙일 수 있는 가장이 되고 싶소"

고갱은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는 예술비평가나 작가들에게는 공격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자신을 눈곱만큼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여기며 눈곱보다 많이 안다고 자랑하는 세상을 증오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웠던 것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족쇄였을 뿐이네.이제 나는 이렇게 외칠 수 있네.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는 눈곱만큼 밖에 모른다고"

이밖에도 고갱은 자신에게 원초적 감성을 제공해 준 "예술적 근원지"였던 타히티 섬에서의 생활도 술회하고 있다.

그는 1903년 남태평양 히바오아 섬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