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의 아버지 제프리 초서(1340~1400)의 유명한 "켄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책이있는마을.송병선 역)가 국내 최초로 완역됐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버금가는 고전인 캔터베리 이야기는 세익스피어 이전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문학사가 헤롤드 볼룸은 초서를 영어권 최고 작가의 하나로 뽑았으며 드라이든은 "영시의 비조"라고 평했다.

켄터베리 이야기는 기독교 성지 켄터베리를 찾아가는 30명의 순례자가 하나씩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돼있다.

기사,수녀,대학생,상인,지주,의사,선장,탁발 수사,신부 등이 각자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초서는 생애 마지막 14년을 "켄터베리 이야기"에 투자했으나 30가지 중 22개만 완결됐을뿐 나머지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첫번째 이야기를 보자.아테네 왕은 테베를 침공,왕족인 팔라몬과 이르시테를 잡아온다.

감옥에 갇힌 두 청년은 창밖으로 왕의 처제 에밀리를 보고 둘다 사랑에 빠진다.

무기수인 젊은이들은 이룰수 없는 사랑과 질투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르시테가 석방된다.

아테네에 두번 다시 발을 들여놓을 때는 사형이라는 전제하에 자유의 몸이 됐으나 에밀리를 볼 수 없는 아르시테와 영어의 몸으로 매일 에밀리를 볼 수 있는 팔라몬 중 누가 더 불행한가.

작가는 은유적인 상황을 통해 생의 진실을 단번에 꿰뚫는다.

고전의 힘은 무수히 중첩된 알레고리일 터.심청전이 단순한 효녀이야기로 읽히지 않고 흥부전이 권선징악의 동화가 아닌 것이 같은 이유다.

제프리 초서는 날카로운 안목으로 본질을 짚어낸다.

"리디아의 왕 크레수스는 포로가 되어 산채로 화형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폭우를 내려 화형장의 불을 꺼버렸습니다.

크레수스는 운명의 여신이 자기를 절대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도망쳐 다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꿈을 통해 교수형을 암시했으나 크레수스는 코웃음 쳤습니다.

결국 그는 잡혀서 교수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중세 말기를 살았던 제프리 초서는 상당히 해학적이면서도 종교적이고 윤리적이다.

그는 "쓰여진 모든 것은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삶은 신을 찾는 과정이므로 켄터베리로 가는 길 자체가 문학이 된다.

초서는 로마인 보에시우스의 "철학의 위안"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는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며 쓴 책이다.

영국 동남부의 켄터베리는 12세기 토마스 베켓 주교가 영국 왕 헨리 2세가 보낸 자객에게 희생된 곳이다.

살인이 벌어진 뒤 켄터베리 대성당은 순교지로 변했다.

헨리2세조차 자기 죄를 뉘우치고 맨발로 걸어서 켄터베리에 도착,채찍질을 달게 받았다고 한다.

TS엘리엇의 극시"대성당의 살인"도 베켓 주교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중세 영어를 문학적 표준어로 만든 초서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7세에 궁정 시동으로 들어간 뒤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프랑스에 이어 이탈이아에 머물며 단테,페트라르카를 섭렵했다.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아우르던 문학가는 죽어서 명예의 전당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