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물리학자가 쓴 미래예측서 "비전 2003(원제:VISIONS)"(미치오 가쿠 저,김승옥 역,작가정신,1만8천원)이 출간됐다.

저자는 뉴욕시립대 석좌교수이자 우주에 관한 "끈의 장 이론"을 창안한 인물.

그는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세계 석학 1백50명과의 인터뷰와 풍부한 과학지식을 동원해 미래 경제의 지도를 새로 그린다.

두루뭉실한 미래전망이 아니라 3가지 명쾌한 주제를 갖고 21세기 비전을 제시해 주목된다.

그는 첨단기술과 두뇌능력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나라가 21세기 경제주도권을 쥘 것이라고 단언한다.

레스터 서로의 지적처럼 "지식과 기술이 비교우위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얘기다.

우선 그가 예측한 미래 발전의 3단계를 보자.

2020년까지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컴퓨터 파워향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이것이 과학혁명을 주도한다.

2050년까지는 DNA컴퓨터와 양자컴퓨터가 개발되고 DNA 서열규명이 완성되면서 핵융합에너지도 상용화된다.

2050년 이후에는 인식을 가진 로봇이 만들어지고 외계에 인류의 정착지를 구축할 계획이 구체화된다.

이같은 변화를 이끌 3대 혁명은 <>컴퓨터혁명 <>생체분자혁명 <>양자혁명이다.

컴퓨터의 위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20년이면 "편재하는 컴퓨터(ubiquitous computing)"시대가 도래한다,건물벽이나 손목,넥타이핀,신발 등 손닿는 곳이면 어디나 보이지 않는 컴퓨터가 설치돼 있고 메모지처럼 싼 컴퓨터가 등장한다.

현재의 PC와 워크스테이션은 사라진다.

이런 세상에서는 "손끝 하나로 정보를 지배한다"는 말이 생활화된다.

보험외판원이나 여행사 직원,자동차 판매원 같은 중간매개직은 도태되고 정보고속도로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서비스직종이 부상한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으로 자인하고 있지만 "걷지도 않고 뛴" 과정을 돌아볼 때 실질적인 연구.개발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생체분자혁명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유전자 해독이 끝나면 의학과 식량산업에 획기적인 변화가 온다.

암이나 유전병 같은 불치병이 정복되고 노화는 단지 "치료 가능한 질병"의 하나로 인식된다.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문제도 해결된다.

자체적으로 살충기능을 가진 식물이나 특정 약물을 생산할 수 있는 식물까지 생겨난다.

양자혁명은 이들 "기적"가운데 가장 큰 항목에 속한다.

극소전자기계시스템(MEMS)과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이 가속화된다.

휘발유와 전기를 함께 사용하는 혼합(hybrid)기관이 내연기관을 대체하고 신물질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도 각광받는다.

이렇게 되면 지역.국가주의는 무너지고 첨단기술로 무장한 "국제 중산층"이 경제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다.

세계화를 넘어 우주화로 가는 길에는 문화장벽과 국가구분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 책의 기본 시각은 기술적 낙관주의다.

정보와 생명,물질이라는 세가지 요소에서 전례없는 발전을 거듭하고 이를 주도하는 인간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살상용 로봇의 전쟁이나 유전자조작으로 인한 인종차별 등의 시나리오를 통해 부정적인 측면까지 살폈다.

유토피아는 인류의 오랜 꿈이자 미완의 공간이다.

과학기술과 두뇌에너지도 좀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백지 어음"과 같다.

그래서 "수동적인 구경꾼보다 적극적인 안무가가 되라"는 저자의 조언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