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옥사한 백산 안희제(1885~1943)열사의 순국 57주년을 맞아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강연회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문화원에서 열렸다.

한국대종사상연구회가 주최하고 문화관광부 한국경제신문사가 후원한 이 행사는 교육사상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백산 선생의 경제.종교사상을 되짚어보는 기회가 됐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이동언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이 "안희제의 교육구국운동"을,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이 "대종교와 백산 안희제"를 주제로 각각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안희제의 교육구국운동=선생은 민중계몽을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고향인 경남 의령을 중심으로 활발한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했다.

1907년 구명학교와 의신학교를 세웠으며 1908년에는 창남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과 신교육 보급에 힘썼다.

아울러 1919년 장학재단인 기미육영회를 조직,장차 독립운동에 투신할 인재양성에 주력했다.

1921년에는 부산예월회를 만들어 학교설립.확장 운동과 교육.산업개선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등 일제의 일선동화 정책에 대항했다.

민족교육에 대한 집념이 남달랐던 선생은 1935년 국외독립운동기지로 설립한 발해농장에 이주민과 2세 교육을 위해 발해보통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 취임,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열정을 쏟았다.

선생은 시대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구국운동을 펼친 진정한 민족교육자였다.

<>대종교와 백산 안희제=백산과 대종교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선생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본질적인 작업이다.

이는 선생이 주도했던 항일활동의 정신적 요체를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산이 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대종교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만주사변 이후 침체됐던 대종교의 중흥을 위해 교적간행 활동을 벌였다.

대종교의 총본산을 발해의 옛 수도인 동경성으로 옮겨 교세확장을 도모하는 한편 총본산의 운영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조달했다.

선생은 또 발해농장을 건설,이를 거점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대종교를 통해 조선민족의 결속을 강화하고 독립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민족독립을 쟁취하는 동시에 "대종교적 이상국가"까지 실현코자 했다.

강동균 기자 kdg@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