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작가 중의 하나인 정영문(35)씨가 신작 "핏기없는 독백"(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거두절미하고 생사의 문제를 직격해들어가는 정씨의 소설은 특별한 줄거리가 없다.

죽음을 앞둔 주인공의 독백이 전부다.

존재를 일시적인 감금으로 간주하는 주인공은 "존재에 의해 훼손된 무의 완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믿는다.

도대체 "열심히"누워있는 것 밖에 할수 없는 이 남자는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순순히 죽음을 맞겠다는 양해각서의 일종으로 혼잣말을 시작한다.

주인공에게 삶은 진저리나는 권태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란 없다.

고통은 살아있다는 착각을 강화시킬 뿐 부서진 그림자 같은 육체는 이미 부패했다.

삶은 하품으로 때워야할 무의미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삶이 최대의 선이다.

현대판 "지하생활자의 수기"라 할 이 소설은 죽음을 앞둔 인간의 내면을 메마른 시선으로 훑어내린다.

허무주의에 결박된 자가 그나마 이야기(소설)를 하는데 성공한 것은 인간이란 때로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에 전념해서는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을 해내기" 때문이란다.

이것이 세상을 건너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을까.

문학평론가 김미현씨는 정씨의 냉소주의에 대해 "삶이라는 드라큘라에게 희망이란 피를 빼앗겨버린 꼴"이라며 "아무 것도 아닌 말로,아무 것도 할말이 없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의 소설적 알리바이"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출신인 정씨는 96년 장편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등단,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을 발표했다.

좋아하는 작가는 사뮈엘 베케트.

최근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제목은 "끝"이다.

윤승아 기자 a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