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수가 일본의 고시 하이쿠에 대해 설명하자 학생 하나가 "제목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본문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하이쿠는 17자로 된 한 줄짜리 시.

학생은 시의 본문을 제목으로 착각한 것이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일본의 하이쿠는 소니(sony)만큼 인기 있는 상품이다.

뉴욕타임즈는 지난해 계절에 관한 하이쿠를 공모,매일 한 편씩 신문에 소개했다.

비트세대(1950년대 일어나 문화운동)를 대표하는 작가 앨런 긴스버그가 하이쿠 신봉자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럽에는 아예 하이쿠시인(하이진)을 자처하는 사람까지 있다.

한줄짜리 시 하이쿠를 모은 책이 나왔다.

제목은 "한줄도 너무 길다(이레)".

하이쿠만큼이나 촌철살인적인 제목이다.

편역자 류시화씨는 일본 고서점을 뒤져 1천편을 고른다음 다시 2백편을 추려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이 숯도 한때는 흰 눈 덮인 나뭇가지였겠지""가을이 깊었는데 이 애벌레는 아직도 나비가 못되었구나"등이 실려있다.

시선집이 다루고 있는 3대 하이쿠 작가는 바쇼,이싸,부손이다.

하이쿠의 아버지인 바쇼(1644~1694)는 일본시문학전집등을 통해 알려져 있으나 이싸나 부손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적 없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

파초를 좋아해 이름까지 파초로 한 바쇼는 선시에서 하이쿠를 장르적으로 분리해낸 인물이다.

평생 떠돌이였던 바쇼는 죽기전 "방랑에 병들어 꿈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는 시를 남겼다.

현재 바쇼의 유랑길은 관광상품으로 개발돼 인기를 모으고 있다.

후손들은 릿샤쿠지의 바위에 올라 바쇼의 하이쿠를 음미한다.

이싸는 불행한 시인이었다.

아내와 아들이 세상을 떠난뒤 살던 움막집까지 불에 탔다.

2만여편의 하이쿠를 남긴 이싸는 일본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다.

초등학생조차 이싸의 시를 외운다.

"달팽이 얼굴을 보니 너도 부처를 닮았구나" 등이 있다.

시집은 느슨하게 엮여 있으나 책장은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로써 모든 이치를 꿰뚫는다"는 일이관지야말로 시의 본령임을 재확인하게 되는 책이다.

하이쿠를 유럽에 소개한 영국인 블라이스는 "사람들이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예수가 본질적으로 시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도와 한국에서 영어교사를 했던 블라이스는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의 아들을 가르치다 하이쿠에 빠져들었다.

시인 류시화씨는 후기에서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시인임을 하이쿠는 말한다"며 "이는 평상심이 곧 도라는 불가와도 통한다"고 말했다.

< 윤승아 기자 ah@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