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철학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입니다. 그것의 상관관계를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정리했습니다. 이는 세계문학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이기도 하지요"

국문학자 조일(서울대교수)씨가 "철학사와 문학사 둘인가 하나인가" "이
땅에서 학문하기"(지식산업사)를 동시에 펴냈다.

세계문학사의 큰 틀을 조망하는 작업과 인문학의 위기극복 방안을 담은
책들이다.

"철학사와 문학사 둘인가 하나인가"는 열네권에 이르는 문학연구 성과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저서다.

그는 중세후기 철학자와 시인들의 대응에 특별히 주목한다.

철학과 문학의 연결고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독교문명권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단테, 이슬람문명권의 가잘리와 아타르,
힌두문명권의 라마누자와 카비르, 유교문명권의 주희와 정철이 대상이다.

그는 이들을 통해 여러 문명권의 철학이 갖는 보편성과 공통점, 상이점을
문학이 자생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철학의 완결된 체계에 가려진 여러 주장을 문학이 역동적으로 표현한다는
것도 밝혀낸다.

철학이 고정화되어 생기를 잃는 결함을 문학이 채워줌으로써 결국 철학도
되살린다는 것이다.

시인들이 철학에서 갈라져 나와 문학을 살리고 문학을 통해 철학이 다시
살아나는 순환논리.

그는 "단일철학을 다원철학으로 바꾸는 작업은 철학이 아니라 시가 한다"고
설명한다.

철학사와 문학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맞물리면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는데 이를 필요 이상으로 분리하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의 이같은 지적은 잘못된 학문정책을 질타한 "이 땅에서 학문하기"로
이어진다.

그는 "경쟁력 없는 인문학은 아예 퇴출돼야 한다는 단견 때문에 학문이
빈사상태에 빠졌다"고 꼬집는다.

대학 교수는 강의에 매달려야 하고 다른 연구소는 학문에 몰두할 수 없는
상황이 인문학의 고사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는 교육정책만 있고 학문정책이 없어요. 대학은 있지만 연구교수
는 없잖아요"

그는 대만의 "중앙연구원"이나 일본의 대학연구소를 예로 들며 학자들이
마음놓고 학문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교수들이 강의하고 남는 시간에 연구하도록 돼 있고 국립연구
기관도 행정기관의 감독과 지시에 따라야 하므로 창의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연구교수"제도를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교육은 하지 않고 연구에만 종사하면서 그만한 성과를 내놓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학문위기는 학내의 힘만으론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된 학문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