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41)씨가 세번째 시집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선재동자의 구도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중심화두는 "동백꽃"과 "산경".

그는 언어와 사물의 경계를 붉은 동백꽃에 비유한다.

그 경계의 끝에 산경이 있다.

중국 고전 "산해경"에서 따온 "산경"은 이상향, 혹은 궁극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들 두 이미지는 독자적이면서도 서로 맞물려 넘나든다.

그에게 동백은 "거친 땅을 밟고 다니느라 발바닥이 아주 붉은" 꽃이다.

때로는 "앞발을 번쩍 들고"("산경가는 길")있는 "짐승"이며 "이른 아침부터/
한 동이씩 꽃을 퍼다 버리는/이 빗자루 경전"("동백이 지고 있네")속의
"문자"이기도 하다.

이전 시집에서 "언어의 감옥"을 얘기하던 그는 감옥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꽃이 피는 순간과 접목시킨다.

동백이 붉은 것은 "짐승의 새끼처럼/다리를 모으고/세차게 머리로 가지를
찢고/나오는" 꽃이기 때문.

그 짐승은 시인의 내면에서 끝없이 발버둥치는 번민이다.

"내 몸이 이렇게 아픈 것도 불로와 불사에 대한 그 비린내 나는 열망과
근심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동백아,/이제 그만 나무에서 내려오려무나/꽃으로 돌아가자"
고 근본을 환기시킨다.

시집 중간부분에서 그가 "동백의 혀는 붉으나 공명과 불후를 노래한 적 없고
/이때껏 수많은 동백의 몸이 나타났으나 결코 인간과 세간에 깃들인 적이
없었노라"고 말할 때 동백은 곧 화엄이요 미륵이다.

"돌부처의 목 부러진 이유를 알겠다"는 시의 제목을 왜 "목 부러진 동백"
이라고 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내 안에서 서로 싸우는 짐승들 또한 그렇다"는 고백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그의 동백국은 율도국 혹은 시의 천축국으로 이어진다.

그가 마침내 가닿고 싶은 "산경"의 중심.

그곳까지 가는데는 "뿔이 잘려나간" 자리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희생"이 필요하다.

한 때 "나는 광장과 전장을 항상 피해왔다/거기서 인간을 마주치기
때문이다"(어느 회의주의자의 일생")라고 고백했던 그는 "등에 거울을 지고
다니는 사람" 혹은 "미처 손으로 받을 새도 없이/가지에서 뚝 떨어져내리는/
동백의 등을 타고 오신 그대"에게 묻는다.

"정말 그곳에는 꺼지지 않는/화염의 산이 사방을 밝히고/불사의 샘물이
흐르고 있습니까"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