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문이 큰스님을 찾아나섰다.

산문에 이르러 개울을 건너는데 시래기 하나가 떠내려 왔다.

"흥, 도인은 무슨 도인, 시래기 하나도 간수를 못하는데"

납자가 발길을 돌리려 할 때 노인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내려 왔다.

"스님, 저 시래기 좀 건져주오. 늙은이가 시래기를 놓쳐 10리를 달려왔구려"

행자는 기쁜 마음으로 시래기를 들고 노스님을 따라갔다"

생명을 걸고 생명을 찾으려는 선객들의 삶은 하나의 도박이다.

노년에 이르도록 견성하지 못한 스님은 후배의 눈총을 받으며 뒷방에 머물다
소리없이 사라진다.

병이라도 얻을라치면 끈 떨어진 뒤웅박처럼 천지간에 홀로 되기 십상이다.

"비정한 삶 속에서 비정을 씹으며 끝내 비정을 낳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선수행인 셈이다.

1973년 신동아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지허스님의 "선방일기"(여시아문,
5천원)는 동안거 90일의 고행을 담은 수기다.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 산사에 칩거, 용맹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대 출신인 지허스님은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오대산 적멸보궁에
몸을 의탁한다.

지허스님에 따르면 절간에는 피안도 열반도 없다.

정신과 육체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고통이 있을 뿐이다.

선객들은 깨달음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화두에
매달린다.

화두를 끌고 가면 도로아미타불.

화두에 끌려가야 번뇌에서 벗어날수 있다.

"스님들의 90%는 위장병 환자다.

식욕이라는 본능에 무참히 패배한 결과다.

한달에 두번 찰밥과 만두국을 별식으로 먹을 때면 과식때문에 배탈 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오후 입선시간엔 신트림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런 날 저녁 식사는 절반 너머 거르게 마련이다"

장좌불와(눕지않는 것) 수행의 고비는 3일째 되는날이다.

신경없는 머리카락과 발톱까지 고통스러운 날, 수마는 전신의 땀구멍으로
쳐들어온다.

만약 장좌불와에 실패한다면 산문을 영영 하직해야한다.

낙오자는 어느 독살이 절에 몸을 부릴 수 있겠으나 참선은 그것으로 끝이다.

지허스님은 선객이야말로 "숙명의 소산이 아니라 운명의 소조"라고 말을
맺는다.

선객의 불안이 스며있는 이 수기를 마지막으로 스님은 더이상 말로써 업을
짓지 않는다.

이후 행적은 글로 남은 바 없다.

먼지묻은 책을 끄집어낸 출판사는 30년만의 출판이 스님께 누가 되지 않았
으면 한다고 했다.

< 윤승아 기자 a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