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아빠를 없애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해줄까"

26일 개봉하는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 는 시작부터 섬뜩한
느낌을 준다.

아빠를 미워하는 딸이 이웃집 보이프렌드와 비디오를 찍으며 나누는 대화는
겁없는 10대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이 영화에는 섹스가 어른 아이 가릴것 없이 삶의 큰 관심거리다.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해 매일 싸우는 중년부부, 외도,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마약, 게이...

병든 미국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심각하기만 하고 "영화보는 재미"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보편성"에 있다.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족에서 구성원들간의 갈등과 불합리한 현대사회의
구조는 미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는 겉으론 행복해 보이지만 부부간에 또 부모.자식간에
갈등을 빚는 가족에 관한 얘기다.

미국 소도시에 사는 레스터 버냄(케빈 스페이시)은 40대 초반의 평범한
회사원이다.

아침 샤워중 자위행위가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남자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남편에 무관심한 아내 캐롤린(아네트 베닝)은
부동산 중개업자로 돈버는 일에 열중한다.

딸 제인은 무능력하고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아빠와 속물근성의 엄마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레스터는 어느날 딸의 치어리더공연을 보러 농구장에 갔다가 딸 친구인
안젤라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 버린다.

그순간 잊고 지내던 삶의 열정이 되살아나면서 드디어 그는 변하기
시작한다.

20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70년대 유행하던 스포츠카
를 구입하는가 하면 대마초에도 입을 대기 시작한다.

안젤라가 원하는 멋진 근육질 몸매를 만들기 위해 조깅과 체력단련에
열중한다.

그럴수록 아내와 딸과의 관계는 점점 악화돼 간다.

아내는 사업 성공을 위해 라이벌 부동산업체 사장과의 혼외정사에 탐닉한다.

딸 제인은 아빠에게 대마초를 밀매하는 이웃집 학생 리키와 가까워 진다.

패스트푸드점에 취직한 레스터는 어느날 아내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가정파탄은 의외의 곳에서 다가온다.

리키 아빠는 창문으로 리키가 레스터에게 대마초를 파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두 사람이 동성애 관계인 것으로 오해하고 리키에게 손찌검을 댄다.

더이상 집에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한 리키는 제인을 데리고 집을 떠난다.

과거 게이였던 리키 아빠는 레스터에게 다가가 유혹하지만 거부당하자
권총으로 그를 살해한다.

한 가정이 가장의 죽음으로 파탄을 맞는다는 게 이 영화의 결론부분이지만
영국의 신예감독 샘 멘데스가 의도하는 것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인생은 짧고 인간들이 각자 노력을 하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뷰티는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게 특징이다.

주연인 케빈 스페이시와 아네트 베닝의 연기가 돋보이지만 주인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두 가정의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다.

이들의 심리와 행동변화를 날카롭게 묘사한 점도 주목거리다.

흥미위주의 영화가 아닌 만큼 30~50대층에 어울리는 영화다.

지난 10일 오스카상의 최우수영화상 감독상등 8개부문 후보에 올랐다.

< 이성구 기자 skl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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