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섞지 말자고
발자국 소리만 나눠 듣자고
손끝만 잡아도
못 볼 거라고
다시는 아무 것도 못 볼 거라고
몸 사리던 그대.
그 몸사림으로 사내 꼬셔 눕혀 두고
오늘은 밥 끓는 소리 헤며
손 깍지 끼고 앉았네.

신진(1949~) 시집 "강"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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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처녀가 아니었던 아내, 한없이 애태우던 연인이 아니었던 아내가
없다는 소리를 흔히 농으로 하지만,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시다.

"손끝만 잡아도 못 볼 거라고" 수줍어하던 아내가 어느새 저렇게 평범한
여인이 되고 말았을까라는 놀라움이 시의 모티브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시의 저변에는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과 세월에
대한 허망함, 인생에 대한 서글픔이 엷게 깔려 있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