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한 소원이 남아있다/내 자식만이 아니라/남의 자식/하나나 둘을
기르고 싶었다/그런 다음에야/누구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누구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지금 남과 북/온통 하나의 낙조 속에 가슴 가득히/못내 아름다워라"
("저녁"부분)

시인 고은(67)씨의 새 시집 "남과 북"(창작과비평사)은 저녁 들판의 송가
처럼 읽힌다.

"생애의 절반쯤은/나그네"였다는 시인이 정착할 정신의 거처는 어디일까.

그가 말한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속에 그 집터가 숨어 있다.

그의 노래는 남과 북의 수준낮은 정치현실로부터 비정치적인 조율과 문화
로서의 음향을 눅진하게 뽑아낸다.

"분단극복은 이제 구호의 시기를 벗어났으며 "단계로서의 인식"과 "실천의
일상"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그는 비무장지대의 "그 누구도 관리하지 않은
풀들"과 "휴전선"에 오히려 감사한다.

그 "옛 주인들"의 땅에게 "이쪽 저쪽도 넓혀가거라/휴전선/동북아시아의
귀신 같은 희망들 여기 오라/넓혀가거라/넓혀가거라"라고 말한다.

원래 있던 자리의 풀과 흙처럼 평화로운 생애가 양쪽으로 기운을 넓혀갈 때
흐드러진 봄꽃처럼 통일도 이뤄지리라는 것이다.

그의 시선은 한반도 남쪽 마라도에서 동북단 두만강 끄트머리 서수라까지,
서산에서 울릉도까지 종횡으로 국토를 가로지른다.

그는 "옛 옥저땅 고기잡이 할아범의 나라이던/그곳 칠보산 동쪽 비탈"에서
"갈 곳 없이 꺼이꺼이 울어/어린 몸에 다 단풍들어버렸"던 아이가 되고
구월산에서는 "한꺼번에 노래하지 말고/조금씩 노래하라고/그러는 동안/백년
원수쯤에도 친구가 된다"는 먼저 간 형의 분신이 되기도 한다.

백두산에 오른 뒤에는 "친구가 나에게 돌아오기보다 내가/친구에게 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이번 시집은 버클리대 객원교수로 가 있던 지난해 여름 집중적으로 쓴 작품
들과 이태전 15일동안 북한을 방문했던 체험으로 엮어져 있다.

"시인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칠레 시인 네루다의 말처럼 모국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 "고생 많이 한 모국어"에게 받은 행복감도 배어 있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