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일까.

밤 11시쯤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호들갑스런 목소리.

"방금 드라마에 나온 남자 봤니" 다음날부터 그는 이곳저곳에서 화제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눈빛, 시니컬한 미소.

깎은듯 탄탄한 몸.

지적이면서도 강렬한 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그는 대번 최고의 스타로
부상했다.

바로 "차인표 신드롬"의 주인공 차인표였다.

눈에 확 띄는 외모로 주목받은 차인표는 이후 영악한 건달(그대 그리고 나)
로, 거지왕(왕초)으로, 노숙자(아름다운 서울)로 폭넓은 연기변신을 하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볐다.

이미지로 한몫 봤다는 데뷔초 평가를 깨끗이 불식시키며 그는 "연기도 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2일 막올린 SBS 수목드라마 "불꽃"에서 차인표는 다시 상류층 인생으로
복귀했다.

능력있는 재벌 후계자로 다분히 오만한 성격의 종혁역이다.

"김수현"이라는 브랜드만으로도 시선이 집중됐던 드라마.

하지만 1, 2회 반응은 예상외로 저조한 편이다.

차인표역시 어색하다는 평이 다수다.

"저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껴요. 워낙 오랜만에 귀족역을 맡아서
그런가" 털털하게 웃는다.

"종혁이란 친구한테 아직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어요. 굉장히 정교하고
섬세한 성격선을 지닌 역이거든요. 이제서야 감이 조금 잡힌달까. 그리고
드라마가 32부작이에요. 한가지 주제를 예리한 날로 파헤쳐 들어가는 작품인
만큼 갈수록 묘미가 살아날 겁니다"

예전엔 시청률이나 인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그는 "어떤 역을 맡든
차인표라는 인물을 지우고 극중 인물로만 되살아나는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고 말한다.

아주 나직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