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극장가에는 모두 세편의 영화가 새로 선보인다.

"반칙왕" "철도원" "비치" 등 한국 일본 미국영화 각 한편씩이다.

세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 드라마, 액션어드벤처로 뚜렷이 구분돼 선호도에
따른 "맞춤관람"이 용이하다.

지난주 극장가에 풀린 "춘향뎐"(판소리드라마) "슬리피 할로우"(공포)
"바이센테니얼 맨"(공상과학) 등과의 뜨거운 흥행경쟁이 예상된다.

"반칙왕"은 프로레슬링이라는 이색소재로 꾸민 블랙 코미디 영화다.

일상에 묶인 소시민의 가슴 한쪽에 잠복해 있는 "일탈의 욕망"을 밖으로
끌어내 한바탕 웃음으로 장식했다.

대호(송강호)는 은행지점의 창구직원.

노상 지각하는데다 예금유치실적도 저조해 부지점장(송영창)을 포함한
동료들에게 왕따당하는 신세다.

유일하게 말을 트고 지내던 동료 두식(정웅인)마저 불법대출에 반대하다
퇴출당하고 혼자 남는다.

우연히 레슬링을 배우게 된 대호는 조금씩 활기를 찾는다.

장 관장(장항선)의 지도로 반칙전문 선수가 된 대호는 뜻밖의 인기를
얻는다.

장 관장의 딸 민영(장진영)에 대한 사랑도 싹튼다.

정통기술까지 익힌 대호는 드디어 반칙왕 "울트라 타이거 마스크"로 새로
태어나 맞수 유비호(김수로)와 한판 혈전을 벌인다.

"넘버3"로 각인된 송강호 특유의 우스꽝스런 캐릭터가 잘 살아 있는 영화다.

웃음을 위한 장치와 상황은 진부한 편이지만 자칫 늘어질 수도 있었던
극흐름을 추슬려 생기를 불어 넣는데 성공했다.

실전 못지않는 레슬링 경기장면을 소화해낸 배우들의 투혼이 돋보인다.

"조용한 가족"으로 코믹잔혹극이 새 장르를 개척한 김지운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철도원"은 일본적 정서가 가득한 우리시대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개인의 작은 행복보다 맡겨진 일에 대한 소명의식에 충실했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일본문단의 이야기꾼으로 손꼽히는 아사다 지로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4백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지난해 일본 최고의 흥행작이다.

눈으로 뒤덮인 홋가이도 폐광마을의 종착역 호로마이.

노선합리화 조치에 따라 곧 없어질 작은 역이다.

정년퇴직을 앞둔 철도원 오토마츠(다카구라 켄)가 역장이다.

오토마츠는 수십년을 한결 같이 기관사로서 또 역장으로서 원칙에 충실해온
"구식" 인물이다.

17년전 늦둥이 딸아이 유키코(히로스에 료코)를 열병으로 보낼 때도, 2년전
아내 시즈에(오타케 시노부)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날도 역을 비우지 않았을
정도로 고지식하다.

오토마츠의 가슴에는 과거에 대한 회한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지만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사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임무에 빈틈없는 것이 철도원으로서의
사명이란 생각에 변함없다.

영화는 오늘을 있게 한 아버지 세대의 어려웠던 삶과 그 세월을 지탱케 했던
의지를 오롯이 담아낸다.

오토마쓰가 보여준 삶의 태도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화면 가득한 무게감은
아버지 세대의 가치를 자꾸 되짚어 보게 할 만큼 육중하다.

노장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3일 개봉된 "비치"(The Beach)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어드벤처 영화다.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갈망하던 리처드(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느날
태국으로 훌쩍 여행을 떠난다.

방콕 호텔에서 프랑스인 애인인 에티엔(기욤 카네)과 프랑소아즈(비에르지니
레도엔), 그리고 마약에 찌든 대피(로버트 칼라일)을 만난다.

리처드와 두 여자는 대피가 그려준 지도를 들고 파라다이스를 향한 모험길에
오른다.

셋은 파라다이스라고 여겨지는 섬에 닿지만 그곳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매력을 부각시킨 것 외에 특별할 게 없는
킬링타임용 영화다.

"트레인 스포팅" "쉘로우 그레이브"의 대니 보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 김재일 기자 kjil@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