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 톱장수로 다 늙도록
눈발은 변함없어
초파일 대목장 공치고 돌아오는 아버지
등짐 진 괴나리봇짐처럼
오 척 단구 눈발에 파묻혀 오는 날
집 없어 고생하는 너희 식구 용돈이나 하거라
삼천 원 던져주고
톱날 같은 눈물 밤새 끊어내면
텃밭 감나무 가지 휘어져 내려앉는 날

이강산(1959~) 시집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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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짐장수로 장바닥을 떠도는 아버지, 공치고 돌아와서는 집없는 아들을
위해 용돈을 던져주는 아버지...

지난날 우리들 아버지의 보편적인 초상화다.

"오 척 단구 눈발에 파묻혀 오는 날"은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표현이지만
우리들의 오랜 기억을 되살리는 효과가 있을 뿐더러 눈발 속에 텃밭 감나무
가지만이 아니라 아버지까지도 "휘어져 내려앉는" 느낌을 줌으로써 시의
울림을 더 크게 만든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