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저자 : 칼 포퍼
역자 : 이상헌
출판사 : 생각의 나무
가격 : 10,000원 ]

-----------------------------------------------------------------------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 칼 포퍼(1902~1994).

그는 명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전체주의의 맹점을 철저하게
파헤친 자유주의 수호자였다.

최근 출간된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칼 포퍼 저,
이상헌 역, 생각의나무, 1만원)에서 그는 지난 세기의 프리즘을 통해 21세기
"열린 미래"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1부 "대화1-20세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는 포퍼가 이탈리아의
저명한 언론인 지안카를로 보세티와 나눈 대담 내용이다.

1900년대를 통째로 견딘 자신의 인생과 두차례의 세계대전, 마르크스 헤겔
플라톤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다.

2부 "대화2-세기의 문턱에서"도 보세티와의 대담.

핵무기를 둘러싼 논란에서 3차 세계대전 위기, 텔레비전의 악영향까지
인류의 당면 문제를 통찰한 것이다.

3부 "반성-민주주의와 역사에 관한 두편의 에세이"에는 그가 남긴 마지막
에세이 두편이 실려 있다.

아흔살이 넘은 노철학자의 삶과 사상, 넉넉한 휴머니즘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읽을 수 있다.

자유방임과 무한경쟁으로 흐르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우려, 이를 조율하기
위한 지식인의 책임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뚜렷하다.

이제는 "열린 사회"에서 "열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진보의 길에는 몇가지 신호등이 있다.

하나는 그가 평생 가르쳐온 "비판적 합리주의"의 교훈이다.

그는 "합리적 비판 없는 곳에는 철학도 자유도 민주주의도 없다"면서
지성인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는 "어느 것이 옳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그의 과학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열린 사고"와 "자유로운 진행방향"을 상징하는 푸른 신호등이다.

다른 하나는 "다수결의 이름이나 국민의 지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절한 간섭이 불가피하다"는 충고다.

이는 빨간불에 해당한다.

그는 그러나 노란불도 함께 준비했다.

그것은 시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도덕적으로 필요한 만큼 이상의
가부장주의는 안된다"는 단서다.

포퍼의 세가지 신호등은 "정.반.합"의 개념과 다르다.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미덕이다.

그는 두번의 세계대전을 모두 겪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극단적 대립을
경험했다.

10대 청소년 시절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는 사회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위험천만한 전체주의적 성격을 발견하고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했다.

이후 그는 자유주의의 열렬한 대변자가 됐다.

파시즘을 경멸했으며 "논리실증주의"의 한계 위에서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을 정립했다.

그는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회는 "열린 사회"라고 강조한다.

열린 사회는 토론과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다.

그런 점에서 가장 좋은 국가형태는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제한의 자유와 관용은 자기파괴적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개입이 너무 적거나 너무 많으면 자유가 죽는다는 얘기다.

"정부는 힘센 자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 모두는 그 정부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의 지론은 3부의 에세이에도 잘 드러나 있다.

"선거일은 새로운 정부에게 적법성을 부여하는 날이 아니라 과거 정부에
대해서 우리가 재판하는 날"이라는 문구가 이를 대변한다.

그는 대중지배(popular rule)로서의 민주주의와 대중평가(popular
judgement)로서의 민주주의 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국민은 보다 나은 조건의 정부를 택할 자유와 독재정권을 피할 자유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 법정(popular tribunal)으로서의 민주주의다.

포퍼의 이같은 지적은 새로운 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치다"라는 삼국지 구절처럼 그가 남긴 유언들은
"열린 미래"의 적을 물리치는 진언이 될 것이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