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의 아내를 처단하는 남편의 복수극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고대 이집트에선 생매장이라는 무서운 형벌을 가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미이라"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바람피운 왕비에게 파라오가 내린 벌은 미이라가 되는 고사형이었다.

의처증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셰익스피어 희곡 "오델로"에선 왕이 직접
왕비를 교살한다.

오델로가 광적인 흥분상태로 데스데모나의 목을 조르는 오페라 장면은
아내의 탈선에 대한 남편의 분노를 상징한다.

남편의 치정살인은 언론에서나 가끔 보도될 뿐 픽션을 다루는 영화에선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흑인의 자식을 낳은 아내를 독살하는 "만딩고"가 오래전 선보였지만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의 이야기다.

남편이 불륜아내를 단죄하는 내용은 이제 관객의 흥미권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세상의 남편들이 그만큼 독해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유부녀의 혼외정사를
"죽을 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드물어졌다.

그런 세태인심에도 불구하고 아내에 대한 치정살인을 담은 두개의 영화가
화제작으로 꼽혀 흥미를 끈다.

"우나기"와 "해피엔드"가 그것이다.

두 영화는 불륜아내를 처단하는 남편의 살인극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마무리는 딴판이다.

"우나기"의 일본남자는 살인후 곧장 자수하여 모범수로 형을 마친뒤
구도적인 삶을 사는데 반해 "해피..."의 한국남자는 완전범죄를 조작해
아내의 정부에게 살인죄를 덮어 씌운다.

두 주인공을 단순비교하면 한국남자가 훨씬 치사해 보이지만 보통남자들의
속물근성으로 보면 "우나기"의 주인공보다 훨씬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해피엔드"에 나타난 실직남편의 남자답지 못한 모습은
오늘을 사는 무력한 한국남편들의 단면을 상징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 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IMF직격탄을 맞고 직장에서 밀려나 아내의 눈치를 보며 집안일을 돕는
한심한 처지.

아내가 출근하면 집안에 남아 어린애 우유 먹이고 TV나 소설책으로 무료함을
달래는 가장의 입지가 불쌍하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해 우유 팩을 접거나 탁자밑 청소를 위해 큰덩치가
끙끙대는 모습은 목불인견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도 현장을 덮치지 못하는 것.

제집에 외간남자가 침입했는데도 아내의 정부와 마주칠까봐 집앞에서 몸을
사리니 남편의 권위손상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바람난 아내를 향해 칼을 뽑는 자세도 치졸하다.

가장 비겁한 위장살인을 택했으니 말이다.

파라오나 오델로같은 제왕의 기개는 아니더라도 좀더 효과적인 방법을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남자의 위상을 구겨 놨다.

그러고보니 "해피 엔드"라는 역설적인 제명은 "남편의 행복은 이제 끝났다"
로 해석된다.

< 편집위원 jsr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