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항아리는 주로 왕실에서 태를 담기 위해 사용했던 항아리다.

대개 내호와 외호로 구분된다.

왕가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태를 즉시 백자항아리에 담아 미리 점지해놓은
길방에 안치해뒀다가 잘 밀봉해 태봉에 묻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그냥 묻는게 아니라 길일을 택해 생후 7일째 되는 날 탯줄을 백번 씻어
내는 "세태의식"을 거행했다.

씻겨진 태는 다시 항아리에 넣어 전국 각지의 명당에 태실을 조성,
안장했다.

이같은 풍속은 왕가뿐 아니라 가산을 가지고 있는 중류층 이상의 가정에서도
실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 마지막 올 겨울,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왕실
태항아리 특별전"(내년 2월8일까지)에서는 71점의 태항아리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탯줄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6백여년전 태조 이성계의 경질도기 태호부터 일제하 마지막 황세손 이구
공의 일본풍 백자태접까지 조선조 태항아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회에 나온 태항아리들은 모두 경기 고양시 서삼릉 태실에서 출토된 것들
이다.

이 전시회에서는 특히 세종의 백자태항아리가 눈길을 끈다.

현존하는 조선백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 태호는 조선백자의 기원을
연구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이다.

출토 당시 내항아리와 지석이 나왔다.

백자의 제작연대를 정확히 알려주는 태지석은 도자기 역사를 연구하는데
절대적인 자료가 된다.

문화재연구소 윤근일 연구관은 "형태는 투박하지만 후대의 전형적인 왕실
태항아리와는 달리 동체 양면에 3개의 고리를 수평으로 2단 부착해 매우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 강동균 기자 kdg@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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