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충무로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키워드는 장르의 다양화다.

멜로 코미디 공포물에서 시대극 액션물에 이르기까지 장르실험의 폭이 깊고
넓다.

특수효과(SFX)와 할리우드적 아이디어를 더해 표현의 한계를 확장하며 한국
영화의 신르네상스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한석규와 심은하, 그리고 97년 최고 관객동원기록(서울기준 67만5천명)을
세운 데뷔작 "접속"의 장윤현 감독.

세 사람이 이 "장르의 성찬"에 메뉴를 하나 보탰다.

텔미썸딩(tell me something).

13일 극장가에 풀리는 이 영화는 본격 하드고어(Hard-Gore) 스릴러를 표방
한다.

하드고어의 사전적 의미는 핏덩이 또는 유혈싸움.

선혈이 낭자하고 훼손된 육신으로 어질러진 엽기적이고 잔혹한 상황을
도발적 영상으로 표현한 영화를 말한다.

늦가을 정취 가득한 멜로물이 어울릴 것 같은 세사람이 만든 영화란 점에서
보면 일종의 "반란"에 가깝다.

영화는 한 여자를 둘러싼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했다.

세기말의 서울.

두건의 엽기적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체는 여섯 토막이 나 있다.

첫번째 사체는 팔이, 두번째 사체는 몸통이 유실된 상태다.

범인에 대한 단서는 거의 없다.

범인은 의학적 전문지식을 갖고 있으며 유실된 사체를 방부처리해 보관한다
는 점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특별수사반의 조형사(한석규)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고전한다.

그런 그를 비웃듯 범인은 세번째 사체를 남긴다.

희생자가 인공치아를 시술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희생자와 관계된
여인 수연(심은하)이 수사선상에 떠오른다.

세사람의 희생자는 모두 수연의 과거 또는 현재의 애인이다.

조형사는 수연을 중심으로 한 연쇄살인사건으로 규정, 수사망을 좁힌다.

그녀의 주변엔 실종된 아버지, 대학동기이자 박물관 동료인 기연(유준상),
친자매 같은 의사 승민(염정아)이 있다.

유력한 용의자는 기연이다.

오랫동안 수연을 흠모해 온데다 해부학 지식도 있다.

게다가 방부제 구입사실도 밝혀진다.

조형사는 그를 연행해 조사한다.

그러나 수연이 누군가로부터 습격받는 사건이 발생하고 풀려난 기연은
종적을 감춘다.

영화는 정공법으로 승부한다.

현란한 카메라기법과 컴퓨터그래픽(CG)을 이용한 눈속임 대신 농밀히 짜여진
이야기로 사건의 이면을 파고 든다.

스릴러물의 전형인 탁한 색감과 거친 질감을 거부하고 담백하고 절제된
화면으로 다가선다.

지치고 황폐한 분위기의 조형사, 차갑지만 연민을 자아내는 슬픔이 묻어있는
수연에 초점을 맞추며 스릴러물 특유의 긴장과 이완의 끈을 잇는다.

그만큼 관객들의 치밀한 두뇌회전을 요구한다.

영화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 10분이다.

두번씩이나 비틀어대는 반전의 소용돌이가 예사롭지 않다.

이를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풀어내는 감독의 솜씨가 인상적이다.

정교히 만든 인조사체, 클래식과 테크노를 아우른 음악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