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을 간직해온 에밀레 종, 그 안에 서려 있는 장인정신이 무대
위에서 오롯이 되살아난다"

그 모습이 산처럼 우뚝하고 그 소리는 용의 읊조림 같아 듣는 사람은 모두
복을 받는다는 에밀레 종(성덕대왕 신종).

그토록 깊고 그윽한 울림을 빚어내기 위해 장인들은 과연 어린아이를
쇳물에 넣었을까.

극단 창작무대우림이 29일 제일화재 세실극장 무대에 올리는 "천년보다
깊은"은 설화에 가려 빛바랜 장인들의 예술혼을 더듬어 올라간다.

소리꾼은 좋은 소리를 위해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을 묻고 산다.

그렇다면 신종은 그 신비한 울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장인들의 한을 머금고
태어났을까.

작가 변형국은 3년여동안 헌 책방과 도서관을 전전하며 자료를 찾고 경주를
수차례나 답사한 끝에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신비의 종을 만들어낸 장인들의
땀내음과 거친 숨결을 재현해 냈다.

최고의 소리를 위해 외손녀를 제물로 바치기로 한 주종대박사 박부부와
예술혼만으로도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후배 주종박사 만공.

두 사람의 갈등 속에 주종박사 일가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박부부는 신종을 완성하지 못한채 실성하고 그의 아들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신종 주종기술을 악용한다.

결국 만공과 남은 장인들에 의해 신종은 탄생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종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

성난 사람들이 종을 깨뜨리려는 순간 신종은 신비의 울림으로 그들의 상처
를 어루만진다.

연출가 민복기는 잔인한 설화에 가려진채 1천3백년동안 잠들어 있던 장인들
의 생생한 열정과 혼을 무대 위에 형상화해 낸다.

극중에서는 실물 크기의 에밀레 종을 재현해 사실성을 더한다.

연기파 배우 전무송이 종을 만들다 미쳐가는 주종대박사 역을 맡아 활력
넘치는 연기를 보여 준다.

전국환은 에밀레 종의 제작비법을 찾아낸 후배 주종박사로 등장해 전무송과
연기대결을 펼친다.

12월5일까지 화.수.목 오후 7시30분, 금.토.일 오후 4시 7시30분.

(02)543-4994

< 김형호 기자 chs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