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원기를 되찾았다.

"댄스댄스" "카라" "러브"등 3편의 추석개봉작에 실망해 축처졌던 충무로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작품이 탄생했다.

2일 개봉되는 김상진 감독의 네번째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이 그 주인공이
다.

"주유소 습격사건"은 현금이 많을 것 같은 한 주유소를 급습한 네명의
"반영웅"을 중심으로 엮여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 통쾌극".

물리적으로는 짧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지긋지긋해 할 정도로 길게 느껴질
하룻밤의 악몽을 스케치했다.

만화에서와 같이 등장인물들의 단순 명료한 캐릭터 설정이 독특하다.

"노마크"(이성재) "무대포"(유오성) "딴따라"(강성진) "페인트"(유지태).

어스름 저녁 24시간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요기하던 이들의 심드렁한
표정이 일순간 확 바뀐다.

두령격인 노마크가 아무 생각없이 던진 말 한마디.

"뭐 재미있는 일 없냐. 또 주유소나 털까?"

일제히 나무젓가락을 놓는 것으로 동의를 표시한 이들의 발걸음은 그냥
주유소로 직행한다.

한바퀴 돌아 제자리를 잡는 삐딱한 구도의 첫 화면에 뭔가 불길한 징조가
가득하다.

주유소의 철이 덜 든 "사장"(박영규)과 어린 아르바이트생, 아르바이트생의
돈을 뜯는 학교 폭력조직의 "짱"과 패거리, 중국집 "철가방 부대",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사람들이 차례로 주유소에 갇히면서 폭력과 웃음이 뒤엉킨다

카메라의 시선은 네 건달들의 아픈 기억을 슬쩍슬쩍 들춰 보이며 지금 이
순간 펼쳐지는 상황의 당위성에 연결고리를 잇는다.

사소한 것에서 "환희"를 느끼고 스스로를 과시해 보려는 보통사람들의
순진하고 추악한 모습도 예리하게 포착한다.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위치가 순간순간 역전되는 나선형 구조의 이야기
전개방식은 긴장감의 외줄타기를 지속시킨다.

비슷한 상황, 그리고 우스꽝스런 표정과 말의 반복이란 3류 코미디 문법속에
녹여낸 웃음은 긴장감을 해소하고 또 조여간다.

전체의 70%에 달하는 들고찍기와 1천3백50컷에 달하는 화면의 이음새에서
드러나는 역동성은 그 느낌을 증폭시킨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타일은 이명세 감독의 화제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많이 닮았다.

머릿속 생각을 드러내는 만화적인 수법, 싸움질의 동작에 속도감을 붙이는
방식 등이 그렇다.

짧은 시간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고 에피소드도 비슷해 중간대목에
이르러선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인생을 관조하고 사회현실을 되돌아 보게 하는 깊이감 역시 부족하다.

그렇지만 가볍게 웃으며 즐기기엔 충분하다.

그게 김상진 감독의 영화에서 꼽을 수 있는 미덕중 하나다.

95년 서울관객 20만명을 동원한 "돈을 갖고 튀어라"로 데뷔한 김 감독이
"깡패수업" "투캅스3"을 찍으며 표방해왔던 것은 바로 "재미있는 영화"였다.

서정적인 사랑영화에 어울릴 것 같은 이성재의 연기변신이 새롭다.

유오성 특유의 표정연기가 여전하다.

SBS의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미단이 아버지 박영규의 연기도 일류
코미디언 수준을 능가한다.

"투캅스2,3"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등을 기획했던 김미희가 이끄는
좋은영화사의 창립작품이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