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송파구의 풍납토성이 기원 후 3세기께 축조된 백제의 초기 토성이자
동양 최대의 판축토성임이 밝혀졌다.

이는 백제가 적어도 3세기 이전에 강력한 왕권을 갖춘 고대국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전유전)는 지난 3개월간 풍납토성의 동쪽벽 일부
구간 중 2개 지점을 절단해 연구한 결과, 풍납토성은 둘레 3.8km, 높이 9m,
성 내외벽 길이가 40m로 현존 국내 최대의 판축토성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판축토성은 사방에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을 댄 뒤 흙을 차곡차곡
다져 만든 성이다.

이번 발굴결과로 볼때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인해 문주왕 원년
(475년)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493년간 풍납토성이
한성백제(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의 왕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백제가 3세기 이전에 대규모 인력동원이 가능한 강력한 왕권국가였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까지 한국고대사학자들은 백제건국이 기원전 18년이며 기원전후에 이미
강력한 절대왕권을 갖췄다고 기록한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을 허구라고
비판하면서 3세기 중반 고이왕 이후부터 역사기록으로 인정해 왔다.

풍납토성은 <>성벽 가장 밑바닥을 뻘을 깔아 다진 뒤 폭 7m, 높이 5m 정도의
사다리꼴 모양으로 중심 흙마루 쌓았으며 <>그런 다음 안쪽에서부터 사질토와
모래, 점토다짐흙을 위주로 한 판축흙마루를 비스듬하게 덧붙여 나간 뒤
<>마지막으로 토루위에 3단의 석렬(돌을 열을 지어 쌓은 것) 할석(깬돌)렬
1단을 쌓았다.

이러한 판축토성법은 고대 토성 축조기술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뻘흙으로 이뤄진 흙마루에서는 판축에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목재들이 얽혀있는 상태로 단을 이루며 같은 간격으로 출토돼 당시 판축방법
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문화재연구소측은 다른 토성이 능선을 이용한데 반해 풍납토성은 평지를
다져 9m 높이로 쌓은 점에서 그 규모가 방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문화재연구소 산하 발굴단은 현재 노출된 부분이 성벽의 윗부분임을 감안할
때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그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고고학 관계자는 "이번 발굴로 몽촌토성, 이성산성, 풍납토성 등 그간
학계에서 논란을 빚어온 백체초기 왕성의 위치가 풍납토성으로 굳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발굴현장에서는 경질무문토기, 심발형토기, 연질타날토기를 비록한 다양한
토기와 동이조각 등이 출토됐다.

발굴설명회에 참가한 이형구 선문대 교수와 최몽룡 서울대 교수 등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출토된 유물들을 근거로 성벽 축조시기가 적어도 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늦어도 3세기 전후에는 이미 완공돼 성으로 기능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강동균 기자 kd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