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은 겉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사설은 늘어놓을 게 못된다는 듯 본론으로 직행한다.

18세 여고 3년생인 Y(김태연).

친구 우리가 흠모하는 38세 조각가 J(이상현)와의 전화통화에서 대뜸
"너하고 X하고 싶다"며 도발한다.

J의 목소리가 근사하고 스무살이 되기 전에 "능동적"으로 처녀를 떼어버리고
싶다는 이유뿐이다.

두 사람은 이후 여관방을 돌아다니며 섹스에 몰입한다.

그 장면이 직설적이고 대담하다.

전라로 서로를 희롱한다.

신체의 중요부분을 모자이크 처리(국내용)했지만 한국영화로서는 파격적이다

남녀의 성기를 나타내는 단어들도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영화로서의 장식과 꾸밈이 없어 거칠다.

둘의 섹스는 변태적이기도 하다.

회초리와 몽둥이로 상대를 때리고 맞는 것으로 전희를 대신한다.

이런 변태행위는 어릴적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J의 정신적 외상과 보상심리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상대가 원한다는 것도 절실한 이유다.

가학과 피학의 주체는 극 중반에 이르러 뒤바뀐다.

매질의 주도권이 남자에게서 여자에게로 옮겨간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인간내면에 잠복한 "엄숙주의"를 조롱한다.

물질적 성공경쟁에서의 패배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보상을 완전한 성적
욕구 충족에서 찾는다.

대낮의 도덕률 대신 한밤의 욕망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회를 지탱케 하는 가치의 위계질서에 대한 전복, 위선과 가식에서의
전면적인 해방을 강조한다.

폴란드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이 만든 영화 "샤만카"도 거짓말만큼
직설적이다.

시대의 지성인 대학교수 미셸(보구슬리브 린다)과 신입생(이오나 페트리)의
육체적 관계를 통해 이성의 굴레에 갇혀버린 인간의 욕망과 사랑의 원형을
들춘다.

미라로 발견된 2천년전 주술사의 죽음 비밀을 풀어가는 추리기법을
동원했다.

화면은 두 사람의 섹스행위로 격렬하다.

방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던 여대생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도발적인 첫
섹스가 이루어진다.

둘은 다른 사람과의 행위에서 얻을 수 없는 성적 만족감에 빠져 끊임없이
서로의 육체를 탐한다.

서로에 대한 "소유욕"이 극한에 달한다.

미셸은 보통사람들의 도덕과 질서를 거부한다.

느낌이 없는 약혼자와의 예정된 결혼을 팽개친다.

이성에 대한 감성의 승리를 의미한다.

두 사람의 사랑행위를 담은 화면 역시 대담하다.

여배우의 체모가 드러나는 장면도 있다.

마지막 여대생이 통조림통으로 미셸의 머리를 내리쳐 살해한 뒤 골을 파먹는
장면은 끔찍하다.

거짓말과 샤만카는 직설적이고 강렬한 사랑행위를 담은 화면만을 놓고 볼
때 유사한 점이 많다.

두 영화는 그러나 운명이 엇갈렸다.

거짓말은 3개월 등급보류 판정을 받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상영할 수 없게
됐다.

샤만카는 9월 4일 개봉된다.

등급심의 기준에 의문을 갖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적 포장기술(예술성)에서의 차이점을 강조할 수도 있지만 그 경계가
애매하다.

폭력과 음란의 과도한 묘사로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영상물의 극장상영을
막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외국영화의 심의에는 너그럽다는 얘기가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거짓말을 제작한 신씨네는 이의신청을 통한 재심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를 계기로 영화 "노랑머리"로 촉발됐던 창작의 자유와 예술성의 한계에
대한 논의가 한층 활발해질 전망이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