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는 국가 이미지가 상징하듯 거의가 예술지향적이다.

할리우드영화 특유의 기발한 착상이나 신나는 모험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영화를 오락물 이상의 것으로 즐기는 팬들은 유럽영화를 선호하고
그중에서도 프랑스 영화를 즐겨 본다.

비록 폭력극이나 섹스물이라 해도 미국영화보다는 한수 위로 쳐주고
지루하더라도 고급영화가 갖는 예술성의 일부려니 생각하고 그 숨겨진
의미를 잡으려 객석을 지킨다.

"폴라X"도 작품성을 추구하는 영화 팬의 허영을 채워주는 데 손색이 없을
만큼 난해한 프랑스영화다.

초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화면을 보인다.

흑백화면으로 해묵은 2차대전의 폭격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를 다 본 뒤에도
그것이 영화내용과 무슨 관련이 있으며,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그래도 명작 "퐁네프의 연인들"을 만든 감독의 작품이므로 어떤 심오한 뜻이
담겨 있으려니 하고 봐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차라리 전개마저 애매모호했으면 좋았을 듯싶다.

동방예의지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반 윤리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수상쩍을 뿐더러 남녀 주인공의 관계에선
궤도이탈이 지나치다.

이복남매간의 정사라니-.

그것도 보통 적나라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오이디프스 콤플렉스같은 인간내면의 심리를 담은
것같기도 한데 아무래도 한국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그래도 주인공이 보이는 요사한 행위가 성도착이 아닌 문학청년의 자의식
으로 그려진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 영화는 그런대로 여운이 있다.

번뇌에 빠진 젊은이의 구도 역정을 보인다고 할까?

명문가의 귀공자가 집을 뛰쳐나와 부랑아로 떠돌며 이복누이와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황폐화 과정"이 그의 도덕적 추락을 감싸준다.

스스로 나락으로 빠져들어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떤 별난 인생"의 단편으로 본다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만일 주인공이 고행으로 득도한 석가모니를 본받아 대오각성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왈가왈부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영화의 매력은 역시 물씬한 서민풍에 있다.

거창한 스펙터클이나 선남선녀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는 드믈다.

상류사회로 시작된 "폴라X" 역시 끝내는 "서민만세"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일찍이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거렁뱅이의 애환을 밀도 있게 보여준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밑바닥인생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것은 고달픈 서민모습에서 인간적 향기를 뽑아내는 프랑스적 예술과
일맥상통한다.

프랑스야말로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고는 인생의 진미를 모른다"는
우리의 속설을 가장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카락스 감독은 "폴라X"에서 그의 장기대로 서민적 삶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서민이 즐기는 영화를 만드는 일에는 실패한 것같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난해함을 싫어할 뿐더러 근친상간의 심리학적 의미를
이해할 만큼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다.

< jsr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