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에는 방황과 저항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확정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초조해 하고 현실의 억압구조를
벗겨내 비상하려는 의지의 다짐으로 늘 열병을 앓는다.

대부분 가진 것이라고는 몸뿐이어서 그 몸살의 열기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사랑은 타협이요, 구속이지만 유일하게 실체를 갖고 기다려주는
것이기에 그것을 향해 끊임 없이 손을 내민다.

영화 "질주"는 그 젊음의 방황과 좌절, 희망과 사랑의 단면을 담은
영상캔버스다.

자기만의 꿈을 키우며 고단한 삶에서 탈출하려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몸부림을 담담한 필치로 스케치했다.

"낙타뒤에서"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등 단편으로 인정받은 이상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에는 에덴빌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스물세살 동갑내기 젊은이들의
일상이 교차한다.

바람(남상아)은 언더밴드 여성로커.

낮에는 클럽에서 서빙하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그리는 자유인이다.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에 젖어 있고 예술과 인기 사이에서
갈등한다.

상진(이민우)은 가난한 젊음의 표상.

일식집과 경마장에서의 잡일로 생계를 꾸리는 그는 여동생의 탈선을 그대로
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의 유일한 꿈은 여자친구를 스포츠카에 태우고 신나게 해변을 달려보는
것이다.

비디오방의 고시낙방생 선우(송남호)는 이기심과 패배의식에 짓눌려 있다.

여기에 밤마다 섹스파트너를 찾아 건들거리는 부잣집 양아치 승현(김승현)이
슬그머니 끼여든다.

카메라는 이들 네 청춘의 삶의 궤적을 따로 또 같이 비춘다.

이들과 한 하늘 아래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빼놓지 않고 눈길을 돌린다.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아픔을 들여다보는 그 시선은 건조하다.

색깔을 덧칠해 묘사하거나 설교하지 않는다.

멀찍이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주제는 역시 사랑이다.

남루한 사랑, 이기적인 사랑, 스쳐가는 사랑, 절실한 사랑 등 그 모습도
제 각각이다.

영화는 그러나 가슴을 흠뻑 적실 정도로 젊음의 아픔과 사랑을 얘기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네 청춘의 일상을 골고루 쫓은 카메라의 시선은 이야기 전개의 힘을
분산시켜 버렸다.

실제 언더밴드 로커인 남상아 특유의 록사운드와 들고찍기, B셔터촬영
(카메라의 셔터를 열어놓고 찍는 기법) 등으로 영화의 호흡을 젊음의 맥박
수에 맞추려 했지만 기대에 못미쳤다.

초반 영상의 역동성을 이어가지 못해 싱겁게 되고 말았다.

젊음이 겪는 일상의 에피소드 역시 늘어놓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김승현의 해맑은 표정 연기는 돋보였지만 깊이가 부족했다.

캐나다에서 열리는 제18회 밴쿠버영화제(9월24일~10월10일)에 우리 영화로는
유일하게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