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이토록 격렬한 사랑이 숨어있었다니..."

전경린(37)씨의 새 장편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문학동네)은
탈선한 열차를 연상시킨다.

선로를 벗어난 순간 열차는 부서지고 구부러진 등뼈를 드러내며 그냥 상처
입은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대부분의 구경꾼들은 이를 옆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누군가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인공 이미흔의 삶에도 어느날 갑작스런 선로이탈이 일어난다.

그녀의 일탈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시작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남편의 숨겨진 여자가 들이닥친
것이다.

이때부터 미흔의 삶은 여지없이 흔들린다.

남편이 극도의 불화를 수습하기 위해 지방 도시의 한적한 마을로 이주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기억과 세상의 빛으로부터 유폐된 그녀에게 한 남자가 나타난다.

사설 우체국을 운영하는 "규".

그는 "구름모자 벗기" 게임을 제안한다.

4개월동안 조건없는 사랑을 나누되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쪽이 지는 게임
이다.

이 돌발적인 상황은 그녀의 내면에 커다란 물굽이를 일으킨다.

외부의 자극이 내부의 소용돌이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미흔은 자신의 속에 감춰져 있던 낯선 것들과의 격렬한 소통에 맞닥뜨린다.

분명하게 존재했지만 예감하지 못했던 것들이 우리 생에는 얼마나 많이
숨겨져 있던가.

진정한 "나"를 만나기 이전의 현실은 그저 평탄한 선로위를 달려온 것에
불과하다.

규와 나누는 대화가 매우 은유적이다.

나비 얘기도 그 중 하나다.

"나비가 날기 위해서는 몸이 뜨거워야 됩니다. 삼십도 이상의 체온을
유지해야 하죠. 그래서 날씨가 맑은 날만 날고 흐린 날이나 비오는 날은 비상
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규와 함께 낚시터에 앉아서도 그녀는 생의 바늘을 본다.

찌가 흔들리고 물고기가 재빨리 끌려 올라오는 순간 그녀는 "내 몸 깊은
곳이 물고기의 입에 와드득 물어뜯기는 듯 혈관 속에 소스라치는 진동"을
느낀다.

소설은 이들의 사랑을 큰 줄기로 삼고 있지만 조연들의 사연도 녹록치 않다.

여고시절 사랑했던 남자를 십여년만에 만난 여자 부희의 지독하고도 순결한
모습, 감옥에서 나온 남편을 피해 살며 화물트럭 운전기사와 사랑을 나누는
휴게소 여자 등이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이들의 사랑은 "합법적으로 제도에 편입돼 기념비가 되는 사랑보다 삶을
무너뜨리고 얼굴을 다치며 내쫓기는 비합리적 사랑"이다.

그러나 작가는 "진부한 삶의 궤도를 이탈해 돌연한 변이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섬광이 늘 아름다웠다"며 "가급적 삶과 연루되지 않는 관능적이고
부유하는 사랑을 미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명한 이미지와 여운이 긴 시적 문체는 전경린 문학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번에도 그의 저력은 새삼 확인된다.

선배작가 오정희씨는 "일상의 작은 소품이나 사소한 스침도 이 작가의 눈길
이 가 닿으면 비상한 생의 은유로 빛을 발하며 우리에게 생은 과연 무엇이고
나는 진정 눈구인가라는 무섭고 두려운 질문으로 닿아온다"고 평했다.

전씨는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96년 단편 "염소를 모는 여자"로 한국일보문학상, 97년 장편 "아무곳에도
없는 남자"로 문학동네소설상, 99년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으로
21세기문학상을 받았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