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덕(1915~1950)은 지난 40년대 우리나라 연극운동을 주도했던 극작가 겸
연출가다.

한국전쟁중 35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첫 작품인 "산허구리"(36년) 등
20여편의 희곡을 발표, 유치진에 이어 해방이전 한국희곡계의 2인자로 평가
받아 왔다.

그러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연구와 무대화의 노력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월북작가란 이유 때문이었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함세덕의 작품세계를 집중조명하는 무대가 마련된다.

국립극단이 11일~22일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무의도기행".

국립극단의 "한.중.일 동양3국 연극재조명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다.

함세덕의 작품이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끊어졌던 근대연극 계보의 한쪽 고리를 이어 우리
연극사의 큰 줄기를 오롯이 되살려내기 위한 작업의 하나다.

무의도기행은 함세덕이 41년에 써 2년뒤 현대극장에서 자신의 연출로
초연했던 작품.

"서정적 사실주의"란 그의 작품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이 작품은 어린
소년이 생계를 떠맡아야하는 한 어부가족의 비참한 삶의 실상을 그리고 있다.

무대는 일제말기 서해안의 작은 섬 무의도.보통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천명은 담임교사 함세덕으로부터 희곡집을 선물받고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명의 꿈은 사치나 마찬가지다.

부모는 경제적 무능력자이고 두 형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죽었다.

가난이 싫어 가족을 뒤로 하고 항구를 떠돌던 천명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고기잡이 배를 타야하는 처지에 놓인다.

두 아들을 바다에서 잃은 부모는 천명을 바다에 내보내는 것을 주저하지만
곡식과 땔감을 대주지 않겠다는 선주의 위협을 이기지 못한다.

천명은 바다에 나가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지만 결국 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작품속의 천명은 끝내 비극적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지 백성의
처절한 삶 그리고 자신이 처한 운명에 저항하다 더 큰 비극에 빠지고 마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번 공연에선 나레이터로 함세덕을 실명으로 등장시키고, 천명을 함세덕과
같은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소년으로 각색한 점이 특징.

함세덕이 사진을 보며 회상하는 장면을 극 앞 뒤에 배치, 묘한 여운을
남겼다.

연출을 맡은 김석만은 "사진으로 두 사람의 인연을 강조해 어린 소년에 대한
어른과 지식인의 책무를 관객 스스로 질문하게끔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민호를 비롯 백성희 이상직 김재건 전국환 등이 호흡을 맞춘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일 오후 4시.

(02)2274-1151.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