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80) 조계종 신임 종정.

출가한 날부터 50여년간 하루한끼 식사와 장좌불와 수행으로 유명한 대표적
선승이다.

1920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혜암 종정은 어릴 적 "인간의 눈은
왜 두 개가 앞에만 있는 걸까"에 의심을 품었다.

그는 45년 일본으로 건너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불교서적에서 찾은 뒤
불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46년 인곡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그 뒤 해인사.송광사.통도사.범어사 등 이름난 선방과 태백산, 지리산 등의
토굴에서 용맹정진해왔다.

그는 지난 11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종정추대식을 가진 다음 곧바로
낙향, 해인사 원당암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깨우치고 있다.

종정은 조계종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갖는 자리.

14일 아침 종정과의 대화는 한시간 이상이나 끌었다.


-종정 취임과 함께 중생들에게 전할 교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교시는 말 그대로 종도들에게 부탁하고 가르치는 말입니다.

제가 세운 첫번째 교시는 우리 종단이 개혁을 숭상치 못하고 부처님의 법이
막히니까 갈등과 혼란이 왔다는 생각에서 "지계청정"이라 정했습니다.

계율을 엄중히 지켜 청정한 중 노릇을 하자는 뜻입니다.

둘째는 조계종의 바른 가풍을 드러내자는 취지로 "종풍선양"이라 정했고,
부처님의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자는 "전법도생"을 마지막으로
삼았습니다.


-종정에 취임하시고 난 뒤 달라진 것이 있으시다면.

"종정이 되고나서 가급적 바깥 출입을 삼가기로 했습니다.

흙토굴에 살면서 여생을 도닦으면서 지낼랍니다. 나머지 생활이야 달라질
것이 없지요"


-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입니까.

"팔만대장경을 한 마디로 나타낸다면 "마음 심"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방편일 뿐입니다.

내 본심을 모르니 갈등이 생기는 것이고 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본심을 깨달으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죠"


-스님께서는 성철 전 종정과 함께 돈오돈수(한번 깨치면 곧바로 부처가 됨)
를 주장하셨는데 그 참뜻은 무엇인가요.

"중 노릇을 하면서부터 나는 온 나라의 선지식을 가리지 않고 두루
찾아다녔습니다.

모든 선사들이 보조 지눌국사께서 주창하신 돈오점수(깨친 뒤에도 계속 수행
해야 한다는 뜻)를 따르고 있는데 성철 스님만이 돈수를 말하거든요.

그까닭을 물으니 통할 사람이 없다고 대답을 제대로 안해요.

그래서 역대 조사들의 어록을 다시 샅샅이 봤더니 깨닫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수행이나 수양은 방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불교는 바로 깨달음을 가르치는 종교이지요.

94년 개혁불사를 할 때 원로회의 의장으로 있으면서 종통의 중흥조로
명문화된 종헌 전문의 보조국사를 태고 보우국사로 고치려다가 주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평소 제자들에게 강조했다는 다섯가지 계행을 소개해주십시오.

"첫째는 밥을 많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밥을 많이 먹으면 몸이 무겁고 잠도 많이 오고 게을러지게 됩니다.

밥을 적게 먹어야 병도 나지않고 늘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공부하다 죽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옳은 일이 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죄를 짓는 것이에요.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도 부하를 사랑하는 것도 모두 죄에요.

오로지 도닦고 공부하는 것만이 죄가 없습니다.

세상만사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알도록 공행을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세째 안으로 공부하면서 참진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공부를 오래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일도양단해서 간절히 할 때에 힘을 얻고 덕을 보는 것입니다.

네째 스님들은 주지 등의 소임을 맡지 말아야 합니다.

종단이 있고 도량이 있으려면 소임자가 있어야 하지만 여기에 집착하면
공부가 안됩니다.

성철스님이 가야산을 다 팔아서라도 줄테니까 해인사 주지 자리를 맡아
달라고 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다섯째 일의일발(한벌의 옷과 하나의 밥그릇)로 청빈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스님의 하루 일과는 어떻습니까.

"저는 이곳의 재가불자(출가하지 않은 불교 신도) 선원인 선불당에서 생활
하고 있습니다.

평소대로 장좌불와(눕지 않고 앉아서수행하는 것)로 철야정진을 하며
신도들과 함께 오전 3시와 오후 7시에 죽비로 예불을 올립니다.

신도들과 함께 참선을 하는 것만큼 확실한 포교가 없습니다.

오후에는 도량을 소제하고 울력(함께 일하는 것)에도 참여합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젊을 때 다쳐서인지 기관지가 몹시 안좋습니다.

그래서 독한 약을 먹고 있는데 그래서 더욱 몸이 못견디겠어요.

지난번 추대식 때도 말이 제대로 안나와 애를 먹었습니다"


-몸이 편찮으신데도 장좌불와를 계속하십니까.

"장좌불와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요.

어록에 빠르면 3일이나 일주일 만에도 견성을 한다고 해서 일주일씩 눕지
않고 계속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50년이 넘었지요.

이제는 몸이 너무 안좋을 때 누우려고 해도 10분만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해 일어나게 됩니다"


-부처님 오신 날(22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종도들이나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난관이나 재앙은 불행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하늘에서는 인간을 길들이기위해 불구덩이에 처 넣습니다.

그곳을 회피하지않고 이겨내는 사람에게 깨우침과 성공을 가져다 줍니다.

괴로움을 기회로 여기고 극복하면 알찬 열매를 맺지요.

실패가 주먹만 하면 성공이 주먹만하고 실패가 태산만하면 그만한 성공을
얻는 법입니다.

위인들은 모두 죽을 자리에서 살아난 경험을 등불삼아 큰 성공을 이룬 분들
입니다.

조계종 종단의 폭력사태도 어찌 보면 마찬가집니다.

저는 잃은 것은 적고 얻은 것은 많다고 말합니다.

나라의 일 역시 위기를 기회로 여기면 극복할 길이 열릴 것입니다".

< 해인사 = 오춘호 기자 ohc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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