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승희(47)씨가 첫 장편소설 "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열림원)를
펴냈다.

그는 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한 뒤 여섯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

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재등단해 화제를 모았으며 3년간 미국
방문학자 생활을 마치고 올해 귀국해 서강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소설은 열두개의 소제목으로 나뉘어져 있고 첫문장이 모두 "광막한"이라는
수식어로 시작된다.

"광막한 바다. 광막한 하늘" "광막한 금요일" 등으로 말문을 연다.

주인공은 마흔살의 독신여성 미랑.

그녀는 미국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며 위태로운 주변인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녀 곁에 "양날개의 균형을 잃어버린" 아웃사이더들이 얽혀있다.

IMF한파로 몰락한 아버지 때문에 졸업을 포기하고 돈벌러 가다 죽는 유학생
형윤, 한달에 한번씩 병원에 난자를 파는 윤희, 미혼모 친구 수란 등 모두가
상처입은 "날개"들이다.

이들의 삶은 늘 갇혀있거나 묶여있다.

한때 "불과 유황이 만나 타닥타닥 등걸불을 튀기며 타오르는"듯했던 미랑의
사랑도 쓰라린 흉터로만 남아있다.

그녀는 결정적인 삶의 순간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낭케(Ananke:운명.필연
성을 의미하는 희랍어)의 힘에 짓눌린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매개로 사회적 중력과 끊임없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비상의 날갯짓을 그린다.

천재 작가 이상이나 무용가 최승희의 몸부림을 작품속에 녹여내고 플라톤과
오르페우스의 "분리-합일론"도 차용한다.

여기에 시적 감수성으로 빚어낸 이미지를 겹쳐놓는다.

그가 이전에 썼던 시 "에헤야 노아라"나 그가 이전에 썼던 시 ''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에 나오는 ''바닥에서 고통의, 상처의/장대 높이뛰기를 할 수
있도록''하는 힘이 그것이다.

미랑이 추락 직전에 존재의 근원을 깨닫는 과정도 상징적이다.

이모인 줄 알았던 생모 운화스님이 죽으면서 대추나무에 새겨 남긴
관세음보살 목각상.

그녀는 관세음을 통해 슬픔의 소리를 "듣는" 단계에서 벗어나 "보는" 경지로
올라 선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