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이 세상의 모든 길이/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시인 안도현(38)씨의 새 시집 "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은 산뜻한
담채화와 묵직한 유화 그림을 겹쳐놓은 것같은 맛을 준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가 등장하는 영화 "일 포스티노"
(마이클 래포드 감독)를 떠올리게도 한다.

바닷가 마을에 혼자 닿은 시인은 그곳에서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인 우체국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우체국의 외로움을
이해한다.

그것은 오래 기다려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그리움의 발신지인 셈이다.

시인은 그곳에 머물면서 우체통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엽서를 부치러 갔다가 줄지어 소풍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나 어린
날 자신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같다고 생각하거나/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생각하는 소년"을 떠올린다.

철이 들면서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지는" 시절도
매만진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바닷물처럼 차오르는 그리움을 만나고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소년"이 된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나는 사랑을
위해 살았다고/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외로울 때는/파도소리를 우표속에 그려넣거나/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 마을을 떠나기 전에 영화속의 자막처럼 "당신, /저 강을 건너가야
한다면/나, 얼음장이 되어 엎드리지요"("겨울 편지")라고 편지를 써 보낸다.

하지만 삶이 어디 아름답기만 하던가.

그는 "제주 자리젓"이라는 시에서 "입이 쬐께한 것이야 살아서 식탐
적었던 탓이겠고, //그런데 눈은 왜 저렇게 크나?/저 눈으로 바닷속을
다 둘러보았다면/지금, 나 같은 것/안중에도 없으리"라며 자신을 돌아본다.

그러다가 "오래된 책 표지같은 군산, 거기/어두운 도선장 부근"의
포장마차에서 "나 혼자 오뎅 국물속 무처럼 뜨거워져/수백 번 엎치락뒤치락
뒤집혀보는"("숭어회 한 접시") 아픔도 보듬는다.

이번 시집에는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양철지붕에 대하여"), "세상보다 더 좋은 교과서를 나는 알지 못한다"
("책") 등 짧은 잠언들이 많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시집 말미에 붙인 자서를 통해 "내 시쓰기는 지상과 천상의 다리를
놓는 바람의 게임, 즉 연날리기와 같은 것이어야겠다"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