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소설가인 하재봉(42)씨가 오랫만에 장편 "황금동굴"(이레)을
냈다.

이 소설은 케이블방송 VJ인 주인공 "나"가 98년 가을부터 2000년
1월2일까지 겪는 사랑과 상처의 고백록이다.

처음 사랑한 여자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나"는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채팅으로 만난 여인 "돌고래"로 인해 진정한 평온을 얻는다.

그러나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이 부담스러워 자꾸 도망치게 되고 결국은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다.

스캔들 때문에 방송생활이 위협을 받게 되자 그녀는 떠난다.

그 빈 자리에서 삶의 소중한 의미를 발견한 "나"는 비로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를 찾아나선다.

제목 "황금동굴"은 실제로 작가의 아이디(ID).

변신과 부활을 꿈꾸는 뜻의 코드명이다.

작가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으며 오랫동안 인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지난 4년간 방송활동 이외에는 글을 쓰지 않고 침묵하며 보냈지요. 짧은
세월이었지만 40년만큼이나 긴 시간이었고 큰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그는 그간의 공백기를 통해 곰이 마늘과 쑥으로 거듭나듯 고통 속에서
더 큰 사랑의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깨달음은 용서와 화해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불교적 선의 경계와 맞닿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태고의 신화와 새 밀레니엄, 사이버 스페이스와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첨단시대의 사랑법을 가장 고전적인 색채로 그려낸다.

전작 "블루 하우스" "쿨 재즈"등이 환상과 허구의 평면세계를 그린
것이라면 이번 소설은 수직과 상승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에는 방송가의 뒷얘기도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생방송 직전의 숨가쁜 상황들과 분장실에서 벌어지는 암투, 프로그램 개편
갈등, 때로는 육체를 무기로 덤벼드는 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영상 정보화사회의 그늘과 감춰진 탐욕의 겉옷을 거침없이
벗겨낸다.

그런가 하면 대학원 시절 만났던 "은방울꽃"과의 사연도 과감하게
털어놨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