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남동에 자리잡고 있는 황남대총은 아직 무덤의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고분이다.

초기신라시대 왕이 이곳에 잠들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73년 이 거대한 고분(80x110m, 높이 22m)이 발굴됐을 때 학계는
출토유물들의 성격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고구려나 백제계통의 유물이 나온게 아니라 북방 스키타이계통 유물
6만여점이 한꺼번에 출토됐기 때문이다.

그 유물중 대표적인 것이 황남대총 금관(6~7세기, 국보 191호)이다.

이 금관은 현재까지 발견된 6개의 신라금관중 가장 화려하다.

출자형 장식이 3개나 되고 뒷면에는 녹각형 입식도 2개가 있다.

장식마다 곡옥이나 귀금속을 꿴 영락이 붙어 있다.

수식은 좌우 3개씩 모두 3쌍이다.

황금을 다룬 공예기술은 더없이 섬세하고 정교하다.

스키타이족들의 후예인 시베리아 샤만은 지금도 머리띠에 녹각과 나뭇가지를
꽂는다.

그래서 출자형 장식은 신라왕조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를 추정할수 있는
단서가 된다.

왕관은 쓴 이는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를 주관하던 샤먼이었다.

말하자면 신과 인간의 중간쯤에 존재하는 절대권력자였다.

이 금관은 그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 오춘호 기자 ohc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