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섬마을 "시헤븐".

이곳에서 사는 트루먼 버뱅크는 서른살의 평범한 보험외판원이다.

그는 태어나서 한번도 마을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지만 피지섬에 여행을
가고 싶어한다.

어릴 적 사랑했던 여자애가 이민갔다는 곳.

하지만 여느 소시민처럼 일상에 묻혀 살아갈 뿐 여행을 할 엄두를 못낸다.

집과 회사를 오가며 가족을 사랑하는데 만족할 뿐이다.

어느날부터 트루먼의 주위에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맑은 하늘에서 조명장치가 떨어지는가 하면 라디오에선 그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는 수수께끼같은 방송이 흘러나온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아내는 새로운 물건을 사올 때면 항상 엉뚱한 곳을 쳐다보며 TV광고같은
말들을 늘어놓는다.

어린 시절의 애인은 그에게 "세상사람이 모두 너를 속이고 있다"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혼란에 빠진 트루먼이 우연히 찾아낸 것은 카메라였다.

트루먼은 자신만 몰랐을 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전세계
시청자에게 낱낱이 방영되는 TV쇼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를 제외한 마을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어머니와 아내까지도 대본대로
움직이는 조연배우들이었다.

제작사는 옴니컴.

거짓으로 꾸민 쇼가 아닌 한 개인의 일상을 솔직히 TV로 보여준다는
거대한 프로젝트속에서 트루먼은 PD(프로듀서)가 만든 운명대로 살아가는
실험용 모르모트였을 뿐이다.

영화 "트루먼쇼"는 이처럼 인간의 삶이란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서 출발한다.

그 누군가는 신일수도,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년"에서 주장했듯 조직원을
감시.통제하는 빅브라더일수도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 "그린 카드" 등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던 피터 위어
감독은 그 통제된 환경의 근원을 미디어에서 찾는다.

극도로 상업화된 방송은 밝은 태양과 비바람까지 컴퓨터에 의해 조작되는
가상도시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예정된 운명을 벗어나 자유의지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냐는 것.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트루먼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세상끝까지 항해할
것을 결심한다.

그가 도달한 곳은 거대한 세트의 끝이다.

그곳에서 그는 "안락한 삶으로 돌아가라"는 PD와 최후의 담판을 벌인다.

영화의 주제가 존재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 신에 맞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까지 확장되는 순간이다.

영화팬들의 기대대로 트루먼은 세트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시청자들은 그에게 환호하지만 쇼가 끝나는 순간 재미있는 프로를 찾아
채널을 돌려버린다.

이쯤되면 시청자들마저 TV에 의해 조정되는 불쌍한 존재로 격하된다.

"마스크" "덤 앤 더머" "에이스 벤추라" 등으로 코미디황제에 오른
짐 캐리는 트루먼역을 열연, 진정한 연기자로 재평가 받았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