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라이얼쇼"는 흔히 말하는 대작은 아니다.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거나 현란한 SF특수효과로 눈을 속이지도 않는다.

제작비도 적고 유명배우도 없는 "그렇고 그런 코미디영화"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처럼 대사가 멋진 스크루볼 코미디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한 수 아래로 꼽는 슬랩스틱류에 가깝다.

배우들이 우당탕탕 쓰러지고 뒤집어쓰며 몸으로 웃긴다는 뜻이다.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코미디 냄새가 난다.

영어제목은 분명히 "시행착오"(Trial and Error)인데 한국에선 "트라이얼쇼"
로 바뀌었다.

법정극이니 "재판"(trial)을 강조한 것 같지만 실은 곧 개봉될 화제작
"트루먼쇼"를 흉내냈다는 의혹이 짙다.

이쯤되면 이류영화의 조건은 두루 갖춘 셈인데도 왠지 이 영화에는
정감이 간다.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풀어가는 소박한 구성과 관객을
적당히 감동시키는 주제 때문이다.

"나에게 주목해달라"며 잔뜩 힘이 들어간 영화와는 달리 요란하지 않아서
보기 편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명 법률회사의 사장 딸과 결혼하게 된 찰스.

출세가도에 들어선 그의 인생은 삼류배우인 죽마고우 리에티 때문에 완전히
꼬이고 만다.

술취한 그를 대신해 리에티가 법정에 출석, 변호사 행세를 한 것이다.

거짓은 계속 거짓을 낳는 법.

치사한 사기꾼을 변호하던 두사람은 우여곡절끝에 승리를 얻지만 곧 회의에
빠진다.

찰스는 출세를 위해 억눌러왔던 참된 사랑을, 리에티는 배우로서 남의 삶을
흉내내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찰스역은 제프 다니엘스가 맡았다.

"덤 앤 더머"에서 짐 캐리의 바보친구로 나왔던 배우다.

리에티역은 마이클 리차드.

"그래서 나는 도끼부인과 결혼했다" "콘 헤드" 등에서 얼굴을 비쳤다.

찰스의 새 연인 빌리는 샤를리즈 데론.

"데블스 애드버킷"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아내역을 맡아 깜찍한 용모를
뽐냈는데 배리 드류모어를 닮았다.

감독은 "나의 사촌 비니"를 연출했던 조나단 린이다.

법정영화는 원래 치밀한 논리 대결, 감동적인 연설, 극적인 반전 등
삼박자가 어울려야 제 맛이 난다.

"트라이얼쇼"가 이중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정통 법정극 못지않은
재미를 주는 것은 절묘한 대칭법 덕분이다.

배역에 몰입해야 하면서도 연기중인 자신을 느껴야 하는 "배우"와 정의를
실현해야 하면서도 사기꾼편에 서야 하는 "변호사".

화해하기 힘든 이 두 직업이 황당한 코미디속에서 손을 잡는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