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아이언스.

영화 "미션"의 고매한 성직자에서부터 "다이하드3"의 사이코 테러리스트
시몬역까지 천의 얼굴을 그려낸 배테랑 연기자다.

그의 차갑고 이지적인 표정 뒤에는 어떤 열정이 숨어있을까.

그는 "데미지"에서 아들의 연인을 사랑하는 불륜을 연기했다.

자책감에 휩싸이면서도 줄리엣 비노쉬를 향한 연정을 이기지못하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17일 개봉되는 영화 "로리타"에서 다시 한 번 스캔들을
일으킨다.

이번에도 저주받은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14살짜리 꼬마 계집아이의 육체를 탐닉하는 문학교수.

상대역 로리타역은 도미니크 스웨인이 맡았다.

"페이스 오프"에서 존 트라볼타의 딸로 나왔던 신예.

80년생이니 영화를 찍던 지난해 한국나이론 17살이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육체와 어머니의 연인을 유혹하는 도발적인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가끔씩 소녀다운 천진함을 내비치는 로리타의 이중성을 잘
소화해 냈다.

영화는 광기에 쌓인 주인공 험버트가 미친 듯 자동차를 질주하며 시작된다.

새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을 그린 스페인영화 "페드라"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불문학 교환교수로 미국에 온 험버트.

전염병으로 첫사랑을 잃은 그는 비슷하게 생긴 소녀에게 집착하는 "상처"를
가졌다.

이른바 "로리타신드롬"이다.

험버트는 곧장 하숙집 딸에게 빠져들고 그녀와 함께 대륙을 횡단하는
도피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로리타는 험버트를 이용하면서도 끊임없이 그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험버트는 로리타와 자신을 이간했다고 의심하던 성불구자 킬티(프랭크
란젤라)를 살해함으로써 파국을 자초한다.

"로리타"는 러시아출신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55년 발표한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62년 스탠리 큐브릭이 블랙코미디로 만들었지만 파격적인 내용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이번엔 "나인하프위크" "위험한 정사" 등에서 농염한 화면을 선보였던
애드리안 라인이 메가폰을 잡았다.

험버트의 심리적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전개가
늘어지며 신파조로 변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상식"과 "욕망"사이를 방황하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주목되는 영화다.

줄거리보다는 세부묘사에서 깜짝깜작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여동생의 약혼자를 사랑하게 된 중년주부를 그린 한국영화 "정사"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9일자 ).